딱딱한 가상과 연약한 자연 사이. 강채연 작가의 영감

인터뷰


우연한 계기로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사용한다는 사소한 이유만으로 누군가가 특별해지기도 하죠. 작품이 좋아서 작가가 궁금해지거나, 작가가 좋아서 작품이 좋아지거나. 순서가 어떻든 상관없어요. 작가의 취향을 알고 나면 그의 작품도 새롭게 다가올 거예요.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하는지. 작가로서의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강채연 작가는,


움직이지 않고 강하고 딱딱한 가상적 속성과 연약하고 부서지기 쉽고 자연적인 회화적 속성의 그 상반된 것들이 상쇄되는 중간지점을 탐구합니다. 정의 내리기 어려운, 존재도 확신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을 디지털 매체로 계획된 이미지와 우연적 효과를 중점으로 하는 회화를 섞는 작업의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중간, 회색지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숨어있는 회색을 주요 색으로 삼습니다.



중간, 그 어디쯤에 대하여


Q1. 자연물, 얼굴 등을 다루었다고 소개해 주신 작품들을 보면 표면에서는 형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요. 작업 방식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디지털 이미지와 우연한 회화적 효과는 작품에서 어떤 관계를 맺게 되나요?


저는 디지털 인쇄 방식과 전통적인 인쇄 방식을 혼합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이미지와 회화 이미지를 다루면서 어느 순간 두 이미지의 속성 차이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상반된 부분의 속성을 서로 주고받게 하면 어떤 속성이 발생할지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작업을 통해 둘을 섞어 서로의 강한 속성을 상쇄시키며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중간 속성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그래서 지금의 작업 방식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Q2. 매체를 탐구하시면서 중간, 회색 지대, 사이 지점 등의 키워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전부터 생각을 하는 순간의 몸은 물리적인 세계에 존재하지 않고 생각을 하는 무형의 지대로 이동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나 내가 목도하고 접한 세계 외의 지대를 상상했습니다. 명명하기 힘든, 존재 여부 자체를 알 수 없는, 물리적으로 들어갈 수 없는 지점을 처음에는 연출된 이미지를 통해 표현했고, 3D 매체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공간 속 오브제들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최근에는 이미지의 결과로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단 작업 방식 과정을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너무 제어된 것과 제어할 수 없는 것 사이를 지향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생기지만 숨어있는 색인 회색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중간에서 보이는 것들


Q3. 유화 작품도, 인쇄하신 작품도 형태와 경계가 모호한 이미지들이에요. 이런 효과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항상 제 작업이 관람객에게 여러 방향성으로 읽히길 바랍니다. 의도를 숨기고 은유적으로 돌려 말하는 제 태도도 작업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Q4. 모호하고 흐릿한 형상은 보는 이들마다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할 것도 같고, 다양한 장면/이야기를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 같은데요, 관람객이 어떤 것을 상상하길 바라나요? 또는 작가님이 작업하면서 떠올리는 상상이 있나요?


작업을 시작할 때 명확한 상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고 그 상이 변형되어 작업으로 남아있지만 저는 관람객이 정확하게 어떤 이미지를 파악하길 바라기보단 작업에서 느껴지는 심상과 느낌이 전달되길 바랍니다. 어떤 상태변화가 되기 전에 멈추는 고요한 시간, 예를 들면 재난이 일어나기 전 고요한 태풍의 눈이라던가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기 전 기이한 징후의 긴장감 같은 거요. 그 외에도 작업을 통해 신체를 바라본다든지, 개인적인 아픔을 작업을 통해 해소하기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Q5. 구름, 꽃, 사람 얼굴 등 관심을 가지고 다루는 소재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떤 대상에 관심을 두고 있나요?


폴스트릭 구름, 다리를 가진 구름, 인스타 셀카의 얼굴, 진동하고 있는 꽃, 부어있는 구름 등 제가 그리거나 모은 대상들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면서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속성을 추가로 부여할 수 있을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명확하고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의구심을 품고 가설과 상상의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는 대상들을 좋아해요. 대상의 이름에서 의구심을 품을 만한 포인트를 찾을 수도 있고 대상의 도상을 통해 찾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캔버스나 다른 스크린에 붙잡아 두면서 근미래적인 저만의 상상을 이어나갑니다.


중간에 대한 단상


Q6. 포트폴리오의 글에서 ‘슬픔’을 언급하신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서로 다른 두 속성을 왜 안타까운 사이로 보셨나요?


평소 움직이지 않고 강하고 딱딱한 가상적 속성을 가진 도래할 미래 세계와 연약하고 부서지기 쉽고 자연적인 회화적 속성들을 섞어보며 영원히 부식되지 못하는 슬픔과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슬픔을 마주합니다. 안타깝게 닮아있는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섞어 그 사이의 회색 같은 사이 지점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로가 서로를 욕망하고 닮아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서로의 약한 부분이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에게 원하는 부분처럼 보여서 슬퍼 보였습니다.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태어났지만 불완전함을 욕망하는 완벽한 상태의 공허함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탐구하고 있는 것은 도래할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삶의 불안감과 어떤 것도 통제할 수 없는 무기력에서 나오는 우울이 묻어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작업 방식에 있어서도 우연적인 것들을 계속해서 통제하려고 하면서 손으로 뭉친 덩어리들을 펴 바르는 행위를 통해 두려움을 만지기도 하고, 우연적인 효과들의 예측불가능함에서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Q7. 일상 속에서 작업의 대상이나 주제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작업의 방향에 영향을 주었던 것 중 몇 가지를 소개해 주세요.


최근에 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영향을 주었던 것은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나 기이한 현상을 포착한 사진, 'Prepper'라는 개념, 정지돈 작가의 소설, SF 소설들인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독특한 아트게임, 전부터 저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고 제가 신체로 겪었던 명명할 수 없는 질병이나 희귀질병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의 뒤편의 작가


Q8. 작업을 위한 루틴이나 습관이 있나요? 감각을 깨우기 위한 운동 같은 거요.


저는 작업실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감각을 깨우는 것 같아요. 빠른 템포의 음악이 심장박동을 올려주고 정신도 깨워주면서 몰입이 되더라고요. 또 전시를 보러 다니면서 작업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다지고 있어요. 동시대 미술 관련 책을 읽으면서는 이전의 담론들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어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Q9. 작업하시면서 음악을 자주 들으시는 편인가요? 관람객들에게 음악 몇 곡 추천해 주세요.


제 작업과는 결이 다르지만 저는 항상 최신 K-pop을 듣습니다. 텐션과 집중력을 올리기 위해 속도가 빠른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합니다. 가끔 한국어가 머릿속에서 맴도는 게 싫을 땐 J-pop을 들어요.


Q10. 생각 정리할 때, 작업 소재를 찾을 때 자주 가는 장소 중 관람객들과 공유해 주실 만한 곳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특별히 자주 가는 장소는 없고, 새로운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풍경들, 모양들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샤워할 때, 새벽, 일기를 토대로 픽션을 가미한 문장들이 직접적으로 작업에 영향을 주진 않지만 생각 정리할 때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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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채연 작가의 세계에서 명확해 보이는 것도 언제든 의구심과 상상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디지털과 회화의 중간지점을 더듬는 매체 실험이기도 하지만 어떤 것도 통제할 수 없다는 비애에 이르기도 하는 서정적인 화면이기도 합니다. 정해진 대로 말고, 여러 방향으로, 어디로 읽어도 괜찮은 그의 작업은 물리적 세계에 발 붙들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한 뼘 정도 떠올라 부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강채연 작가의 작품은 난트 웹사이트에서 감상 및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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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채연 작가의 영감상자


  • 최신 K-POP 듣기
  • 어떤 상태변화가 되기 전에 멈추는 고요한 시간, 예를 들면 재난이 일어나기 전 고요한 태풍의 눈이라던가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기 전 기이한 징후의 긴장감
  •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나 기이한 현상을 포착한 사진, 'Prepper'라는 개념, 정지돈 작가의 소설, SF소설들
  • 샤워할 때, 새벽,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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