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예술가, 카일리 매닝
전시 소개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카일리 매닝(@manningkylie)의 《황해(Yellow Sea)》 전이 SPACE K 서울(@spacek_korea)에서 11월 10일까지 열립니다. 알래스카와 멕시코 해안을 오가며 생활한 작가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는데요. 미대 학비를 벌기 위해 연어잡이 어선을 타고, 500톤급 배를 운항하는 항해사 면허도 취득합니다. 그가 배 위에서 바다와 부대끼며 쌓아온 감각은 세찬 붓터치와 어지러이 어우러지는 색채로 캔버스 위에 재현되었죠.
스페이스K 서울 '카일리 매닝 : 황해 Yellow Sea' 전시전경
카일리 매닝은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에서 쓰던 기법을 차용합니다. 겹겹이 바른 물감의 유분이 빛을 굴절시키는 효과인데요. 특히 <뒤집히다(2024)>는 그 같은 기법으로 인해 작품 스스로 빛을 내뿜는 인상을 줍니다. 작가의 생활권이었던 알래스카의 오로라를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땅과 바다의 구분이 무색한 장관을 표현한 듯합니다.
(좌) 카일리 매닝의 <뒤집히다>
(우) 카일리 매닝의 <격변>
<격변(2023)>에서는 고채도의 청록과 살구색, 두 종류의 거친 물살이 인물을 덮치는 듯한 풍광이 눈에 띕니다. 그 가운데 앉은 자세로 무릎을 괸 채 자리를 지키는 인물의 적포도색 윤곽이 두드러지죠. 당시 작가는 출산 이후 뉴욕시티발레단과의 협업을 포함해 크고 작은 작업을 진행 중이었는데요. 다양한 과업을 수행하는 가운데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이의 복합적인 감정이 한데 녹아있는 듯한 작품입니다.
카일리 매닝의 <자연의 자연 (The Nature of Nature)>
<자연의 자연(2024)>은 폭이 총 6m에 달하는 세폭화입니다. 갑작스레 일어난 파문처럼 선명한 인물로 시작해 점차 형상이 모호해집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걸으며 작품을 감상하면, 탄생에서 소멸로 이어지는 시간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치열한 삶을 살던 한 개인이 삶의 유한성을 포용하고, 자연에 귀속되는 숙명을 보여주는 것만 같죠.
카일리 매닝의 작품에서는 구상과 추상의 밀고 당기는 긴장감이 가득합니다. 보려고 하면 급류에 정체를 감췄다가, 방심한 사이 슬쩍 제 모습을 드러내는 대상을 포착하는 재미가 있죠. 그림과의 즐거운 눈싸움을 해 보고 싶다면, 전시를 놓치지 마시길 바랄게요.
《황해(Yellow Sea)》
2024.8.9 - 2024.11.10
서울 강서구 마곡중앙8로 32 스페이스K 서울
Editor. 성민지
Image. Space K, Kylie Man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