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함을 공유하는 영화와 명화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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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명작의 궤도에 오른,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봤다면, 요정의 머리를 통째로 뜯어먹는 괴물을 기억할 겁니다. 보통 잊기 힘든 이 장면은 고야의 그림 한 점을 연상시키는데요. 실제 감독은 평소 고야의 '검은 그림' 연작에 애정을 갖고 있었다고 하죠. 오늘은 이처럼 섬뜩함을 공유하는 네 쌍의 영화와 명화를 소개합니다.





• 히에로니무스 보스와 <가여운 것들>

미술상을 비롯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가여운 것들>은 몇 점의 그림에서 출발했습니다.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이 그중 하나. 영화는 괴짜 과학자 갓윈 벡스터의 손에서 태어난 벨라가 하나의 피조물에서 세계를 탐구하는 인격체로 거듭나는 여정으로, 종교 중심의 중세에서 인본주의로 전환되던 화가의 활동시기와 묘하게 맥을 같이합니다. 영화 곳곳에서 화가의 흔적이 묻어나지만, 두드러지는 것은 갓윈의 실험동물. 이들은 그림 속 아르마딜로의 몸에 개의 얼굴을 한 동물, 직립보행하는 새 등 쉬이 정의하기 힘든 다양한 동물을 닮았는데요. 감독은 이 ‘혼종동물’을 탄생시키기 위해 실제 거위에게 세트장 내 트랙을 달리게 한 뒤 시각효과를 입혔다고 하네요.





• 즈지스와프 벡신스키와 <에일리언>

즈지스와프 벡신스키(Zdzisław Beksiński)는 영화 <에일리언>을 검색할 때 꾸준히 언급되는 화가입니다. 1929년 폴란드 남부도시 사녹에서 태어난 그는 갓 10살이 되던 무렵 2차 세계대전을 겪습니다. 이후 그는 건축을 전공하고 건설현장 감독관으로 일하는데요. 전쟁을 겪은 10대 시절에 직업 특성까지 더해지면서 폐허는 그의 눈에 밟히는 일상이었습니다. 건축 골조 마냥 촘촘히 쌓아올린 해골 뼈는 척추동물의 특징을 극대화한 에일리언을 연상시킵니다. 둘 다 치밀한 세부묘사와 엄혹한 분위기로 공포를 유발하죠.





• 마우리스 코르넬리츠 에셔와 <서스피리아>

폐쇄감은 공포영화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감각입니다. <서스피리아>의 감독 다리오 아르젠토는 이를 위해 네덜란드의 그래픽 아티스트인 에셔의 작품을 십분 활용하는데요. 영화는 독일 발레학원에 입학한 한 학생이 원인불명의 사건에 휩싸이는 이야기로, 첫 번째 살해사건이 일어난 방 벽지로 에셔의 <하늘과 물>이 등장합니다. 그림자와 실체가 분간되지 않는 그림이 불안함을 조성하죠. 또 다른 공간에서는 무수히 반복되는 아치형 문과 계단 벽화로 이상한 집단에 꼼짝없이 붙들린 주인공의 처지를 보여줍니다. 에셔풍의 패턴과 아르데코식 인테리어, 눈이 시린 형광 색조가 촬영기법과 만나 소름 끼치는 감각을 완성합니다.




• 프란시스코 고야와 <판의 미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에서 가장 고어적인 장면은 괴물이 요정의 머리를 뜯어먹는 장면일 겁니다. 이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끌어왔다고 봐도 무방한데요. 요정을 해치우는 괴물과 달리, 고야의 그림 속 사투르누스의 눈동자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아들이 자신을 죽일 거라는 신탁에 제 자식을 해치우는 광기. 이를 관객의 시선을 통해 처음 맞닥뜨린 듯한 희번득한 눈동자가 압권이죠. 고야의 그림은 19세기 초 6년 간 이어진 스페인-프랑스 전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한편 <판의 미로>는 1930년대 스페인 프랑코 정권의 억압에 대한 은유로 해석됩니다. 130여 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예술은 가혹한 현실을 포착해내고 있네요.


Editor. 성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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