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조각의 관념을 흔드는 개념미술가, 로만 시그너
아티스트로만 시그너의 <Wasserinstallation> 1999
SNS에서 조롱받는 작가
‘현대미술’ 하면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비주얼만 보고 ‘나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하는데요. 스위스의 개념 예술가 #로만시그너(Roman Signer)의 작품은 현대미술에 대한 이 같은 편견을 자극합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된 ‘모래기둥(Sandsäule)’이 대표적. 모래를 가득 채운 빨간 양동이로 세운 탑이 쓰러지는 작품인데요. 한 네티즌은 “중력에게 박수를!”이라는 조롱 섞인 댓글을 달기도 했습니다.
로만 시그너의 <Sandsäule> 2008
그의 작품은 기존의 조각에 대한 관념을 흔듭니다. 일단 그가 다루는 재료들은 견고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모래, 물, 양초 같은 재료는 특정한 형태로 고정되지 않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또한 퍼포먼스로 보기에는 중요한 지점에서 예술가는 한발 물러섭니다. 중력, 불꽃, 바람 등 자연이 작품의 핵심적인 역할을 도맡죠. 익히 아는 물리력을 도입한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당혹감을 느낍니다.
이쯤에서 그의 또 다른 작품 ‘물 설치(Wasserinstallation)’를 살펴볼까요. 평평하게 설치된 수로가 있습니다. 중앙의 원형 공간에 카약이 떠 있고, 사방으로 뻗은 물길 8개가 보입니다. 로만 시그너는 각기 다른 수로를 향해 노 젓는 퍼포먼스를 선보이죠. 유속도 거의 없지만, 노 젓기가 썩 수월해 보이진 않습니다. 앞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후진하는 모습은 미련해 보이면서도 처연함을 자아냅니다. 참고로 그는 유년시절 산악지대에서 카약을 탔다가 친구를 잃은 경험이 있는데요. 이 같은 사실에 비춰 보면,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향한 가정법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좌) 로만 시그너의 <Bürostuhl> 2006
(우) 로만 시그너의 <Haus mit Raketen> 2013
작가는 작품 속에서 자연에 의지하지만, 동시에 자연은 온전한 제어가 불가능한 요소입니다. 촘촘한 설계는 작가의 몫이지만, 자연이 없다면 그의 작품은 완성되지 않죠. 로만 시그너의 작품에서는 자연과의 오묘한 힘겨루기가 느껴지는데요.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에는 물리법칙에 대한 탐구, 시간이 완성하는 작품, 현존에 대한 질문 등이 포함됩니다. 당신은 로만 시그너의 작품에서 무엇이 보이나요?
로만 시그너의 <Wasserstiefel (Water boots)> 1986
Editor. 성민지
Image. @hauserwi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