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못지않은 가치, 아트북과 카탈로그
칼럼책을 모티브로 작업하는 강애란 작가의 개인전 <A Room of Her Own>(2016) 전경
매년 가을 바람이 선선히 불 때면 아트위크도쿄(AWT)를 갈 생각에 설렙니다. 아트위크도쿄의 좋은 점은 셔틀을 운영한다는 점인데요. 교통비가 만만치 않은 도쿄에서 택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도쿄 전역의 미술관과 갤러리에 갈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VIP에게는 입장료가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의 여러 미술관을 무료로 볼 수 있는 혜택도 주어지죠. 매년 이 리스트에 모리미술관, 도쿄신미술관, 도쿄현대미술관이 포함되는데요. 지난해에는 와타리움미술관도 새롭게 그 리스트에 올라왔습니다. 이 미술관에는 '아트러버라면 누구나 가고 싶을'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온선데이즈(On Sundays)'라는 공간인데요. 뮤지엄숍과 서점을 겸한 카페로, 미술관 1층과 지하에 위치해 디자인, 사진, 미술 관련 수입 서적은 물론 아트상품들이 잔뜩 쌓여 있는 공간이죠. 매혹적인 이 공간에서 책들을 훑어보다, 일본 작가 코헤이 나와의 친필 사인본 도록을 발견했어요. 한정판으로 적은 물량이 입고되었다는 코헤이 나와의 사인본을 여기서 발견하다니! 완전 럭키비키잖아(?)
코헤이 나와의 <Sandwich> (2023)
서명된 도록은 값어치가 있을까?
작가나 저자의 서명을 받기 위해 줄을 서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팬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죠. 2016년 맨부커 국제 문학상 수상 기념으로 만들어진, 한강 작가의 팬사인회에서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시집을 급히 골라 서명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한강 작가의 책을 한권도 읽지 않았기에, 가장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택했죠.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던 노벨문학상의 주인공, 한강 작가의 친필 서명본 시집의 가격은 올랐을까요? 네, 맞아요. 당시가격의 50%가 오른 12,000원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작가의 서명을 받는다고 경제적인 값어치가 천문학적으로 오르진 않아요. 대신 경제적으로 매길 수 없는,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만한 나만의 추억이 생긴 것 뿐이지요. 앞으로도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 오프닝 소식이 들려오면, 도록과 샤피 마커를 챙겨 줄을 서볼 겁니다. 사인을 받으며 작가에게 말 한마디이라도 건네보고 싶어서 말이죠.
작가의 일평생이 담긴 특별한 도록, 카탈로그 레조네
작가와 미술 작품을 다루는 책은 종류와 발행주체에 따라서 다양하게 제작됩니다. 도록은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기념해 제작되죠. 잘 만든 도록은 작가를 널리 알리고, 전시 작품들을 아카이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작가의 전작을 담은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 raisonné)는 국가의 문화적 권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프랑스어로 ‘믿을만한 도록(reasoned catalogue)’을 의미하는 카탈로그 레조네는 보통 작가의 일평생 혹은 특정 시기에 생산된 모든 작품에 대한 전시 이력, 소장자 정보, 보수 이력까지 기재되어 한 작가의 논문이자 화집, 보증 수표와 같죠.
하지만 해외에서 보편화된 반면 국내는 시작 단계에 머물러있습니다. 1969년에 설립되어 올해 9월까지 운영된, 미국의 비영리단체 IFAR(International Foundation of Art Research)에서는 '발행된’ 그리고 ‘발행 준비 중인' 전세계의 카탈로그 레조네 목록을 웹을 통해 공개하고 있는데요. IFAR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카탈로그 레조네가 제작된 작가는 3,257명 그리고 그 중 한국 작가는 단 5명(김기창, 김환기, 양혜규, 장욱진, 천경우)뿐이죠.
또 다른 아트피스, 아트북
하지만, 최근 박서보 선생님과 유영국 선생님의 카탈로그 레조네에 가까운 전집(Monograph)이 출판사 리졸리(Rizzoli)를 통해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리졸리에서 만든 박서보 작가와 유영국 작가의 도록은 두 작가와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200권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제작된 허찬미 작가의 <창작을 위한 변경>
한국에도 이런 양질의 아트북을 만드는 회사가 있습니다. 영화와 미술 기자로 활동했고, 아트 크리틱과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조숙현 대표가 만든 아트북프레스입니다. 아트북프레스는 세계적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자전적 에세이를 번역한 <Ways of Curating :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큐레이터 되기>를 시작으로 허찬미 작가의 작품을 책 커버에 녹여넣어 만든 핸드메이드 아트북 <창작을 위한 변명>(2020), 화이트큐브와 전시를 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이진주의 아트북 <Lee Jinju Art Book>(2021), <뮤지엄게이트>(2021) 등을 출간했어요. 최근에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최찬숙 작가의 아트북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2024)을 준비하고 있죠.
천만 원까지 오른 호크니의 도록
이런 도록들은 소장 가치가 있을까요? 아트페어 북스토어나 해외 유명 미술관에 있는 서점에서 특별 제작된 북스탠드 위에 올려진 데이비드 호크니 대형 도록을 본 적이 있을거예요. 바로 타셴(Taschen)에서 출판된 <The David Hockney SUMO>인데요. 타셴은 일본의 스모선수처럼 거대한 대형 판형의 한정판 도록을 SUMO라는 이름을 붙여 출간합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도록은 10,000권 한정판으로 제작되었고, 이중 1,001 – 10,000까지의 9,000권만이 컬렉터 에디션으로 판매가 되었죠. 2016년 출간 당시 400만 원대인 도록은 지금 수집가들 사이에서 2배가 넘는 850만 – 1,000만 원대에 거래가 되고 있어요.
(좌) 베네딕트 타셴과 데이비드 호크니
(우) 베네딕트 타셴과 헬뮤트 뉴튼
50 x 70cm의 스모 사이즈 도록에는 1960년대 초기작부터 현재 아이패드 드로잉까지 60년이 넘는 호크니의 작품 세계를 담았어요. 제작 단계부터 호크니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450개 이상의 작품이 수록되었고, 13점의 작품은 펼쳐서 볼 수 있도록 들어가 있습니다. 타셴에서 출간된 또 다른 빅사이즈 도록, <MY WINDOW>(2022)는 아이패드 드로잉을 모은 것으로 29x37.7cm의 크기로 제작되었어요. 호크니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충분히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명성의 아트북 출판사
그렇다면 좋은 도록은 어떻게 고를 수 있을까요?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나 모두가 알만한 유명한 작가의 전시 도록을 구하면 되겠죠. 하지만 아직 아는 작가가 많지 않고, 여러 가지 도록을 구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할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출판사는 책을 고르는 좋은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뉴욕에서 지낼 때 저는 스트랜드 북스토어(Strand Book Store)를 자주 갔습니다. 스트랜드 북스토어는 뉴욕의 대표적인 중고 서점이에요. 서점 밖 가판대에는 항상 3~7달러에 판매되는 책들이 한가득 쌓여있어요. 정리되지 않은, 뒤죽박죽 섞여 있는 책장 속에서 숨은 보물을 찾듯 헤맬 때, 책등 하단의 출판사 로고로 좋은 도록들을 선별하곤 했죠.
그 때 보았던 주요 출판사는 리졸리, 스키라(SKIRA), 파이돈(Phaidon Press), 타셴, 템즈앤허드슨(Thames & Hudson), 하체 칸츠였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한 리졸리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출판사로, 이 출판사에서 도록을 만든 작가들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명성을 갖고 있는 중요한 작가들입니다.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리졸리 책에 주목해 보세요. 민음사의 문학전집처럼 리졸리에서 다룬 작가들을 안다면, 미술사의 중요한 작가들을 다 아는 것과 같으니까요. 리졸리에서 나온 도록의 작가인데 아직 내가 모른다면, 리졸리 도록을 구입해 작가를 알아보기를 추천합니다.
타셴은 앞서 언급한 호크니의 스모 사이즈 대형 도록들을 만드는 출판사로 유명합니다. 타셴은 마로니에북스 덕분에 국내에서 가장 친숙한 아트북 출판사이기도 하죠. 마로니에북스는 타셴의 도록들을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하고, 혜화 대학로에 도서와 작품을 소개하는 카페를 운영하기도 하며, 직접 미술 관련 서적을 출판하기도 합니다.
공동 출판을 위해 회의 중인 템즈앤허드슨 (1970년대)
왈터 노이라트와 에바 노이라트가 설립한 템즈앤허드슨은 런던에 본사를, 뉴욕에 자사를 두고 있는데요. 출판을 통한 '벽 없는 미술관'을 표명하며, 더 많은 대중에게 양질의 예술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죠. 오랜 기간동안 비용 절감을 모색하며 국제 공동 출판의 시발점이기도 한 템즈앤허드슨은 우리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예술을 접할 수 있게 도와주었죠. 왈터 노이라트는 템즈앤허드슨을 열기 전에 Adprint라고 하는 런던의 출판사에서 일했는데, 그 때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펭귄북스’를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템즈앤허드슨에서 출간한 <The Thames & Hudson Introduction to Art> (2015)
그렇다면 국내에서 도록을 구할 때는 어떻게 할까요? 언어의 장벽은 없기에 읽고 고르면 되지만, 도록 대부분이 래핑을 하기 때문에 읽고 사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믿고 사는 출판사와 판매처를 추천해 드릴게요. 먼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발행된 도록들은 전시에 맞춰 나오기 때문에 전시를 보기 전, 혹은 보고 난 후에 구입을 하면 좋습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작하기 때문에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것도 큰 장점이에요. 국립현대미술관 패트론이 되거나 멤버십에 가입하면 온라인숍 미술가게에서 할인도 받을 수 있어요.
하우저앤워스에서 발간한 백남준 작가의 개인전 카탈로그(1993)
샘터, 열화당, 을유문화사, 학고재에서 나오는 미술 책도 좋습니다. 도록보다는 미술 이론, 작가의 에세이 등이 담긴 책들이 많이 출간됩니다. 갤러리에서도 양질의 전시 도록을 만날 수 있는데, 해외에서는 가고시안, 데이비드쯔워너, 하우저앤워스, 국내에서는 가나아트와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우손갤러리, PKM을 추천드려요. 최근 더페이지갤러리와 파운드리서울도 구매하고 싶은 도록들이 발간되고 있어,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여행은 걸으며 하는 독서라는 말이 있죠. 좋은 가을 날씨에 좋은 책 많이 읽고, 좋은 전시 많이 보시길 바라요.
Editor. 박준수
Image. 아르코미술관, 아트북프레스, TASCHEN, Thames & Hudson, Hauser & Wi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