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누리는 방법, 정해져 있는 게 아니야
트렌드성큼 다가온 온라인 미술 세상
독일 린츠주립미술관이 크립토복셀 플랫폼에서 진행한 온라인 전시 <Proof-of-Art> 전경 (출처: OÖ Landes-Kultur)
미술작품을 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작품을 요리조리 보고, 작품 설명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고, 의미를 생각해 보고…. 그런데, 그전에! 작품을 어디서 어떻게 보았는지 생각해 보면! 말할 것도 없이, 전시장을 직접 가서 실물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재작년부터는 코로나-19로 많은 미술 전시와 행사들이 온라인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는데요, 우후죽순 온라인 뷰잉룸이 생겨난 후, 메타버스로 확장되며 온라인 미술 세상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처음에는 오프라인을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지만, 이제는 온라인만의 특성과 매력으로 새로운 작품 감상의 세계를 열고 있습니다.
가까이, 아주 가까이 작품을 끌어당기다
(좌) 구글아트앤컬쳐로 본 네덜란드 미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출처: 구글아트앤컬쳐 캡쳐)
(우) 초근접으로 보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출처: 구글아트앤컬쳐 캡쳐)
온라인으로 우리는 작품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덕분입니다. 구글의 문화예술 프로젝트 구글아트앤컬쳐(Google Arts & Culture)는 이미 2011년부터 스트릿 뷰 기능을 활용하여 전 세계 2500여 곳 미술관, 박물관의 전시실에 대해 온라인 뷰잉 기능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아카이빙 된 초고화질 작품들은 마구 확대해서 붓 터치까지 감상할 수 있는데, 실제 미술관에서는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온라인 관람이 나아 보이기도 합니다. 온라인 뷰잉룸의 큐레이팅 된 컬렉션, 다양한 읽을거리 등 흥미롭게 편집된 콘텐츠는 작품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데요, 전용 앱을 이용한 ‘증강현실로 보기’, ‘공통점 살펴보기’ 등 흥미로운 기능으로 풍부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으니, 호기심 많은 사람들에겐 더 알찬 감상이 될 수 있겠죠!
여기저기 물어가며 찾았던 정보들이 수면 위로
아트바젤에 참여한 학고재 갤러리의 온라인 뷰잉룸 (출처: 학고재 갤러리 온라인 뷰잉룸 보도자료)
점점 더 화질이 좋아지고 기능이 다양해지는 온라인 뷰잉룸은 아트페어와 같이 판매가 목적인 미술행사에서도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과연 온라인 뷰잉룸으로 판매가 많이 될까 의심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카테고리로 검색하고, 클릭 한 번으로 작품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최저-최대 등 원하는 가격대로 찾아보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등의 자유로움이 그 의심을 극복했습니다. 글로벌 아트페어 최초로 온라인 거래가 이루어졌던 지난해의 홍콩 아트 바젤(Art Basel)은 25만 명의 접속으로 서버가 잠시 마비되기도 했고요, 억대의 작품들이 다수 판매되며 이메일 문의가 쏟아지는 등 판매 가능성이 확인된 후에는 온라인 뷰잉룸이 아트페어에서 필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작품 위에서 우당탕탕 뛰었다고??
메타버스 속 쾨니히 갤러리의 <The Artist is Online> (출처: KÖNIG Galerie)
전시와 관람객 모두 과감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온라인입니다. 메타버스와 미술작품이 만나면서 예술적 상상이 담긴 비현실적 공간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관람객들은 아바타를 통해 실시간으로 여러 접속자들과 소통하고 마음껏 움직이며 꾸러기가 될 수 있습니다. 쾨니히 갤러리(KÖNIG Galerie)의 NFT 경매를 위한 메타버스 전시 <The Artist is Online>은 벽을 뚫고 들어오는 디지털 조각을 구현했는데요, 관람객은 작품 위를 감히(?) 뛰어다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메타버스 속에서는 사람도 작품도 다치지 않으니까요. 미술 작품과 기획력이 만드는 가상현실 속 독특한 풍경이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됩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거나 말도 안 되는 각도로 작품을 보는 신선한 경험, 현실 미술관의 금기를 깨는 쾌감은 덤입니다.
물고기는 물에 살고, 디지털아트는 디지털에서
회화나 조각을 직접 마주했을 때 실물 작품 특유의 ‘아우라’를 생각하면 온라인 전시가 살짝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예 창작될 때부터 디지털 작품이라면 어떨까요? 최근 메타버스 플랫폼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디지털 아트들의 자유로운 전시가 가능해졌습니다. 관람객들도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요. 미술품 경매사 소더비(Sotheby's)는 디쎈트럴랜드(Decentraland)라는 플랫폼 내에 본사 경매장을 그대로 본뜬 가상의 건물을 지어 NFT 작품 전시 <Natively Digital>을 열었고, 독일 린츠 주립미술관은 플랫폼 크립토복셀(Cryptovoxels)에 NFT 미술품의 흐름을 주제로 전시 <Proof of Art>를, 런던의 갤러리 유닛런던(Unit London)은 플랫폼 인스티튜(INSTITUT)에 <NFTism: No Fear in Trying>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좌) 디센트럴랜드에 문을 연 소더비의 디지털 아트 전시 <Natively Digital> 전시장 입구 모습 (출처: Sotheby's)
(우) 뉴욕 소더비 전시장에서의 디지털 아트 전시 <Natively Digital> 전경 (출처: Sotheby's)
모두 ‘가상현실’과 ‘현실’에서 동시에 진행된 전시인데요, 가상현실인 메타버스에서는 각각의 아이덴티티를 살린 독특한 공간 콘셉트에, 다양한 디스플레이로 전시가 구현되었습니다. 현실 속 NFT 전시 풍경은, 글쎄요 아직은, 규격화된 장비나 물리적으로 정해진 공간이라는 틀 속에서 여러 시도를 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전시 전경 사진을 비교해서 봐도 디지털 아트를 디지털 속에 전시하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입니다.
(좌) 독일 린츠주립미술관이 크립토복셀에 지은 디지털 아트 전시공간에서의 <Proof of Art> 전시 전경 (출처: OÖ Landes-Kultur)
(우) 독일 린츠주립미술관이 현실에서 진행한 <Proof of Art> 전시 전경 (출처: Artmagazine TV 유튜브 캡쳐)
최근 사명을 ‘메타’로 바꾼 페이스북은 가상현실 물체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장갑을 개발하여 시제품을 공개했습니다. 이러한 장비를 이용해 온라인으로 작품들을 만지고 체험하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는 날도 머지않아 다가오지 않을까요? 기술은 어찌 되었건 세상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내놓으며 우리의 환경을 바꾸고 있으니, 기술을 충분히 이해하는 콘텐츠가 관건으로 보이는데요. 어떤 작품과 어떤 기획이 온라인 미술 세상을 더 풍성하게 할지, 앞으로 어떤 풍경이 온라인 미술 세상에 펼쳐질지 기대를 가지고 지켜볼 만합니다.
메타에서 공개한 가상세계를 손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햅틱 장갑 시제품. 7년 간의 연구 끝에 개발되었다고 한다. (출처: Me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