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비싸면 작가도 부자일까?

/ 칼럼



47억 원 그림의 작가, 사실 돈 없어 은박지에까지 그림을..?!


추급권


장 루이 포랭의 풍자화


“10만 프랑!” 프랑스의 한 경매장에서 그림이 낙찰되자, 작품 주위로 흥분한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사람들의 등 뒤로 웬 행색이 누추한 사람 둘이 낙찰된 그림을 가리키며 말합니다. “아빠 그림이잖아!” 프랑스 화가 장 루이 포랭이 그린 풍자화입니다.



작품이 비싸면 작가도 부자일까?


작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도 작가나 유족들과는 별로 상관없는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작품이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후에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미술 작가들이 처음부터 유명하기 쉽지 않죠. 무명시절에는 작품이 낮은 가격으로 거래될 수밖에 없습니다. 점차 작가로서의 왕성한 활동을 통해 유명해지면 작품가도 상승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초기 판매된 작품가와 재판매되는 작품가 사이에 차익이 발생하는데, 이 차익은 재판매 작품을 거래하는 당사자들, 즉 직전 소장자 또는 갤러리에게만 돌아갑니다.



한 번 팔리면 땡?!


유명해지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렇지만 프리랜서와 다름없는 작가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생활고를 겪는 경우가 많고, 당장의 생계유지를 위해 작품을 헐값에 팔아 버리기도 합니다. 나중에 인정받더라도 이미 고생한 본인이나 유족들에게는 직접적인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작품이 고가에 거래되기로 유명한 이중섭, 김환기 작가도 정작 본인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고, 유족들도 혜택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중섭2

이중섭 <은지화>


그림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했던 이중섭은 사후 2010년 ‘황소’가 35억6000만 원에 팔린 데 이어 2018년에는 ‘소’가 47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미술계 종사자들은 ‘추급권’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급권이 뭔데요?


추급권 (Resale Royalty Right/Droit de Suite)이란 미술저작자가 원저작물을 최초 양도한 이후에도 재판매 될 때에 수익의 일정 비율을 분배 받을 권리를 말합니다.

추급권은 작품 가치의 상승에 작가의 몫이 있다고 봅니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이후에도, 가격이 올라 거래될 때마다 차익의 일정 비율 금액이 작가에게 지급될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것입니다. 유명 작가로서 성장하기까지의 시간과 노력도 어느 정도 보상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작품 감상 3초에 만원 내세요(???)


음악, 문학, 영상과 같은 장르는 음반, 출판물, 영화 상영 등 복사본의 유통에 따라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는데요. 미술작품의 경우 ‘원작’이어야만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에, 복사본의 유통은 의미가 없습니다. 미술작품은 한 번 거래되어 작가와 이별하면 끝! 저작권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죠. 그렇다고 사람들이 작품을 본 만큼을 계산해서 금액을 책정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추급권을 위해서는 작품의 거래 이력을 남겨야 합니다. 거래 시마다 가격 변동 폭을 파악해야 수익을 분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가격이 기록된다는 점에서 자신의 재산, 소장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컬렉터들이 많습니다. 또한 소수의 컬렉터에게 의존하는 폐쇄적인 미술품 거래 문화로 인해 개인 간의 거래가 많고, 이 경우 추적이 어렵습니다. 때문에 해외의 경우 공개적인 경매를 통한 거래에 한해 추급권을 보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권리 보장 외에 추급권 도입의 기대효과도 분명히 있습니다. 거래 이력 기록을 통해 미술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작품의 위작 시비를 막을 수 있습니다. 작품의 진위를 가리는 데에 중요한 것은 ‘작품의 출처’거든요! 이 과정에서 미술시장이 투명해지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미술작품 구매와 관련해 탈세행위를 떠올리는, 오해를 풀 수도 있지 않을까요?




더 알기


-      미술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프랑스의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가 1858년 헐값에 팔았던 <만종>이라는 작품이 그가 사망한 1875년에 당시로서 거금에 재판매 되었음에도 그와 별개로 너무나 궁핍한 삶을 살았던 유족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추급권 도입의 목소리가 시작되었습니다.

-      1920년 프랑스가 최초로 추급권을 도입한 이후 현재 세계 82개국에 도입되어 있습니다. 2006년부터는 EU 회원국 전체가 추급권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판매액에 따라 0.25~4%의 추급권 요율을 정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추급권 외에 별도로 작품 구매자가 총 지불액의 5~7%를 예술인복지기금 형태로 운영될 수 있도록 납부하기도 합니다.

-      추급권은 포기하거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며, 상속이 가능합니다. 유럽 국가들은 저작권이 유지되는 기간인 작가 사후 70년까지 추급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미술품 추급권(Resale Royalty Right)의 도입과 과제>, 국회입법조사처, 2019년

“미술작가의 저작권 ‘추급권’ 도입될까?” 경향신문, 2020.12.26

<미술품 “추급권”, 캐나다에도 도입될까?>, 한국저작권위원회 정책연구실, 2011

“가난한 화가, 비싼 그림값, 그리고 추급권” 중앙일보, 2018.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