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참상을 담은 만레이의 뮤즈, 리 밀러
아티스트리 밀러의 <SS Guard in Canal> Dachau, Germany, 1945
초현실주의 사진가 #만 레이(Man Ray)의 모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을 누빈 사진가가 된 #리 밀러(Lee Miller)의 이야기가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영화 <LEE>로 지난 9월 북미에서 개봉했습니다. 그녀가 전쟁 사진가로 활동한 시기로부터 80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경력 전환과 과단성은 놀라운데요. 어린 시절 아마추어 사진가 아버지의 모델이었던 리는 우연히 <보그> 표지를 장식한 것을 계기로 사진가 에드워드 슈타이센(Edward Steichen)을 통해 만 레이(Man Ray)에게 사진을 배우기로 결심하죠.
리 밀러의 <Portrait of Space> near Siwa, Egypt, 1937
리는 1929년부터 1932년까지 4년간 만 레이의 곁에서 조수이자 연인으로서 함께 합니다. 이 시기 만 레이와의 협업은 리에게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제 목소리를 발화하는 법을 일깨웠을 겁니다. 그녀가 만 레이와 헤어진 뒤 이집트 여행 중에 촬영한 사진 ‘Portrait of Space(1937)’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요. 찢겨진 방충망 너머로 황량한 사막을 가르는 새를 닮은 구름은 항상 눈앞의 현실 그 이상을 갈망한 리의 영혼을 보여주죠.
이후 그녀는 홀로 떠난 프랑스 여행에서 남편이 될 롤랜드 펜로즈(Roland Penrose)를 만나고, 전쟁 직전 프랑스 남부의 무장에서는 평생 친교를 맺게 된 화가 피카소와 막스 에른스트, 시인 폴 엘뤼아르 등과 평온한 한때를 보내고 런던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1939년 9월 1일 영국 전역에 전쟁이 공포됩니다. 그녀는 미국대사관으로부터 귀국하라는 우편을 받으나, 런던에 머물며 영국판 보그 사진가로 활동합니다. 나아가 1942년에는 Conde Nast 출판사를 통해 미 육군의 공인 사진가가 되죠.
(좌) 리 밀러의 <US Army nurses in an operating theater in Churchill Hospital> Oxford, UK.
(우) 리 밀러의 <Auxiliary Territorial Service searchlight operators> 1943
1945년 6월 영국판과 미국판 보그에 ‘Believe It’라는 제목으로 실린 그녀의 포토 에세이는 독일 부헨발트와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보여줍니다. 당시 리가 보그 에디터 오드리 위더스(Audrey Withers)에 보낸 편지에서는 해당 사진을 거짓이나 선동으로 여길 독자들에 대한 우려가 엿보입니다. 리의 사진을 실은 덕에 보그는 단순한 패션 잡지에서 나아가 저널리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의지와 또 한 사람의 결단이 만날 때 세상이 얼마나 넓어지는지를 보여주죠.
리 밀러의 <부츠와 탄약> St Malo, France, 1944
리 밀러의 사진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망가진 어두운 현실과 그 가운데에서도 희망의 광원을 발견하는 두 양상이 혼재합니다. 731명의 사상자를 낳은, 탐조등 조작을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담은 사진(1943)에서는 위협적 상황에서도 미래를 기약하는 시선을, 생 말로에서 촬영한 부츠와 탄약(1944)에서는 육체가 사라진 자리에 뼈처럼 자리한 탄약을, 포탄으로 파괴된 오스트리아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에서 소프라노 이름가르트 제프리트(Irmgard Seefried)가 노래하는 사진(1945)에서는 폐허 위에도 피어날 예술의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인생과 작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제 자리를 갱신하고, 잔혹한 현실을 전복하는 의지를 발견합니다.
리 밀러의 일대를 그린 영화 <LEE> 포스터
Editor. 성민지
Image. Lee Mi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