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거장 퀸시 존스를 추모하며
이슈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1984 그래미 시상식)
2024년 11월 3일, 미국 대중음악계의 거인 #퀸시존스(@quincyjones)가 91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70년이 넘는 존스의 음악 인생이 곧 팝의 역사 그 자체였는데요. 시대를 초월한 명곡과 혁신적인 음악적 도전으로 팝, R&B, 록, 재즈 사이 경계를 허물었던 존스는 음악계 살아 있는 전설로 불려 왔죠.
존스의 존재감은 단순히 ‘거장’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알파벳 ‘Q’만으로도 퀸시 존스를 뜻한 만큼, 팝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건히 해왔죠. 대중에게 존스를 각인시킨 일은 단연 마이클 잭슨과의 오랜 파트너십인데요. 1980년대 존스가 프로듀싱한 잭슨의 ‘Off the Wall’, ‘Thriller’, ‘Bad’는 팝 역사에 위대한 걸작으로 남아 있으며, 특히 ‘Thriller’는 단일 앨범으로는 최다 판매량(6,600만 장)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1985년 아프리카 기근 구호를 위해 프로듀싱한 ‘We Are the World’는 마이클 잭슨과 함께 음악으로 세상의 마음을 움직인 사회 공헌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기도 하죠.
(좌) 디온 워릭, 스티비 원더, 퀸시 존스,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1986 그래미 시상식)
(우) 라이오넬 리치, 다릴 홀, 퀸시 존스, 폴 사이먼, 스티비 원더
시카고 빈민가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천부적 재능을 보였던 퀸시 존스. 재즈 트럼펫 연주자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이내 작곡과 편곡에 눈을 돌려 역량을 넓혀갔습니다. 재즈에서 출발한 존스의 음악 여정은 팝, 영화 음악, TV 프로그램 제작 등 다양한 분야로 뻗어 나갔는데요. 그 특출난 재능은 무려 80번의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고 나아가 28번의 수상 기록을 달성하게 했죠. 2011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예술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1991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의 퀸시 존스
존스의 멜로디는 언제나 시대와 공명하며 세대의 감정을 대변해 왔습니다. 오늘날 팝 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의 융합 또한 퀸시 존스의 혁신이 밑거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기술적 기교가 아닌, 그의 작품들에는 진심 어린 메시지와 사회적 책임감 또한 담겨있죠. 음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보여준 퀸시 존스의 별세에 슬픈 공허함이 맴돌지만, 그의 영혼이 음악과 함께 영원히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Editor. 전지은
Image. Quincy Jones, The New York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