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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세라가 우리에게 남긴 것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 #리처드세라(Richard Serra, 1938-2024)가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녹이 슨 주황빛 철판으로 웅장함을 전개해 온 그를 사람들은 ‘강철의 예술가’로 이름했죠.


타고난 재능으로 일찍이 미술의 길을 선택한 세라는 학부 시절 프라도 미술관(@museoprado)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을 대면하곤 그것에 가까워질 수도 없다는 생각에 회화를 벗어던지는데요. 모더니즘의 긴 그림자에서 탈출하려는 60년대 예술계의 실마리가 된 개념미술, ‘관념’을 재료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당대 흐름 속에 세라가 선택한 것이 바로 ‘강철’입니다.





어린 시절 조선공인 아버지와 함께한 진수식에서의 기억과 학창 시절 제철소에서 일한 경험 덕분에 강철은 세라에게 각별한 물질이었죠. 라텍스, 네온 튜브, 유리 섬유를 거쳐 납으로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으나 역시 지금의 세라를 있게 한 작품은 1981년 맨해튼 청사 광장에 설치된 <기울어진 호(tilted arc)>입니다. 370m 길이의 성인 키를 훌쩍 넘는 이 거대한 강철판은 경관을 해치고 통행을 방해한단 이유로 격렬한 논쟁 끝에 8년 만에 철거되었지만, 공공미술의 역할에 대해 재고시킨 의의를 남깁니다.





거대한 크기의 강철판이 주는 압도감은 일순간 미술계를 매료시키며 세라의 전매특허가 되었습니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museoguggenheim)을 장악한 <시간의 문제(The Matter of Time)>에서 그 예술성이 폭발하는데요, ‘걷고 만지고 보는 것’을 강조한 세라의 감상법을 극대화한 작품이죠. 마지막 커미션 작품이 된 <동-서/서-동(East-West/West-East)>은 카타르 자연보호구역에 1km를 걸쳐 세워진 네 개의 강철판인데, 광활한 사막 위에 동일 선상 높이로 설치되어 이세계적인 광경을 연출하며 세라 본인의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이 되었습니다.





관람객은 세라의 강철판에서 불안함과 공포감, 아늑함과 숭고함이 동시에 오는 기이한 감정을 체험합니다. 철에 대한 강한 자신감으로 예술계에 없던 구조적 잠재력, 공간감, 전개력을 창출했죠. 사나운 성격 탓에 동료에게 미움을 사기도 했지만, 대담한 강철 조형을 창작한 것 또한 그 거침없는 성향 덕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소장용 예술’을 경계하며 다수를 위한 ‘관계의 예술’을 지향한 리처드 세라의 강철판이 이제는 귀중한 유산으로 남게 되었네요.


📷 Guggenheim, MoMA, The New York Times, Arch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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