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렛 애프터 섹스가 선택한 한국 사진가

아티스트



한 분야의 특출난 인물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색채를 발산하는 인물을 ‘장르’로서 간주하기도 하죠. #민병헌은 그 특유의 ‘꿈결 같은 회색빛’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사진작가인데요. ‘민병헌 그레이’라는 수식어를 탄생시키며 사진계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인물입니다.





최근 미국의 4인조 락밴드 ‘시가렛 애프터 섹스(@cigsaftersex)‘의 새 앨범 <X‘s> 표지에 민병헌 사진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죠. 시가렛 에프터 섹스는 문자 그대로 ‘관계 후 담배 한 개비’라는 뜻으로 ‘그 순간의 덤덤함과 몽롱함‘ 같은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보컬 그렉 곤잘레스(Greg Gonzalez)의 차분하고 중성적인 목소리, 심플한 멜로디에 묻어 있는 쓸쓸하고 아련한 감정, 분명하지 않은 사운드의 몽환적인 정서가 특징입니다. 음악에 대한 설명만으로 안개가 자욱한 모노톤의 민병헌 사진이 떠오르는 건 기분 탓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앨범 표지에 실린 민병헌의 <MG325>는 뿌연 유리창 너머로 입맟춤을 하는 두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인데요. 흑백의 차분함 속 관능적인 묘사와 분명하지 않은 이미지로 상상력을 자극하죠. 지난 2022년 갤러리 구조(@gallerykuzo)에서 열린 민병헌 개인전으로 이 작품을 접한 그렉 곤잘레스에게는 마치 그들의 선율이 영화 속 한 장면으로 탄생한 듯한 경이로운 순간이었을 겁니다.





“흑백 사이 회색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단계의 색이 있다.”


회색을 향한 민병헌의 이 애정 어린 말에서 불쑥 ‘수묵화’가 떠오릅니다. 무채색의 농도만으로 세상을 묘사하는 동양의 먹그림이죠. 서양화에도 이와 비슷한 소묘라는 기법이 있지만, 민병헌 사진에서 유독 ‘우리 멋’이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희뿌연 함’ 때문일 겁니다. 한지에 먹이 자연스레 스며들 듯 그의 사진 역시 몽롱한 꿈처럼 안개가 자욱한데요. 난생처음 보는 풍경도 민병헌이 담으면 내 오랜 기억 저편에 묻혀 있던 비밀스러운 장면을 찾아낸 것 같죠.





국립현대미술관부터 지구 반대편 휴스턴 미술관 그리고 다시 저 멀리 프랑스 국립 조형 예술관까지, 민병헌 사진 특유의 아련함이 동서양을 막론한 매력으로 전 세계에서 소개되고 또 소장되고 있는데요. 오는 7월 12일 발매될 민병헌 사진이 담긴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세 번째 정규 앨범 역시 그 자체로 소장하고 싶은 멋진 작품으로 탄생했습니다.


📷 갤러리 구조, Kiaf, Gallery Now

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