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바늘 없는 시계가 상징하는 것
전시 소개러시아 작가 액스 미스유타(Aks Misyuta)의 아시아 첫 개인전 《정점의 직전(Best Before)》이 #페레스프로젝트(@peresprojects) 서울에서 6월 30일까지 열립니다. 그의 그림은 명암법이라 불리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으로 그려졌는데요. 먼저 어두운 색을 캔버스 전반에 칠한 뒤 밝은 색을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한 까닭에 불투명하고 후텁한 기운이 느껴지죠.
그림 속 인물들은 틀에서 주조된 고체 덩어리를 깎아둔 형태처럼 보입니다. 양감이 느껴지지만, 안에서 쌓아 올린 것이 아닌, 바깥에서 깎아낸 형태감이랄까요. 제한된 틀 안에서 만들어진 듯한 인물들의 몸은 잔뜩 팽창해 있고 캔버스를 여백 없이 채웁니다. 작가는 이에 대해 “부풀어 오른 모습은 우리의 유약한 본성을 묘사하는 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인물들의 모습은 배경과 쉬이 구분되지 않는 어두컴컴한 색조에 묻혀있는 가운데 신체 부위부위마다 빛을 반사합니다. 그중 유난히 눈에 띄는 디테일은 손목시계인데요. 시계는 사실상 손목에 채워진 것이 아닌, 피부에 음각으로 새겨진 것처럼 묘사되었습니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지울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압박을 보여주죠. 한편 그럼에도 시곗바늘과 숫자는 지워진 덕에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개개인을 암시합니다.
작가 본인은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 후 7년간 기자생활을 한 뒤 미술을 독학, 작가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당시 그림을 그리겠다는 자신에게 가족들은 ‘시간 낭비’라며 반대했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 작가는 “글 쓸 때보다 그림을 그리며 훨씬 더 큰 자유를 느낀다”고 하죠.
자유로움이란 자신의 존재가 세상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는 감각. 오랜 시간 기자생활을 한 그녀에게 자유를 느끼게 한 대상은 그림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세속의 시간을 각인한 채 살고 있지만, 시간을 잊을 정도로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요.
액스 미스유타 Aks Misyuta
《정점의 직전(Best Before)》
∙ 2024.05.16 - 2024.06.30
∙ 페레스 프로젝트, 서울 종로구 율곡로1길 37
📷 Aks Misyuta, Peres Projec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