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매인 여성과 핑크색 거친 욕망들

아티스트



엘레인 스피어스(@elainespeirsesme)의 그림에서는 산뜻해 보이는 컬러가 혼탁해지고, 낭창하게 뻗어나가려는 터치가 뭉개지는 곳곳에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각기 다른 에너지의 충돌이 느껴지죠. 작가는 19세기 영국 소설 토마스 하디의 <테스> 속 여성의 연약함과 강함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2003년, 영국 BBC 선정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은 소설’ 26위에 오르기도 한 <테스>는 종교로 구성되던 구시대와 증기기관으로 규정되는 새 시대의 회오리바람 속에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한 여성을 보여줍니다. 과연 화가는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받았을까요?





작가의 그림에서는 유약함과 강인함이 색과 터치, 선으로 표현됩니다. 코랄과 베이비핑크는 부드러운 정조를 자아내나 금세 배경의 눅진한 카키색에 파묻힙니다. 무언가에 부딪힌 듯 뻗어나가는 붓질은 폭발하는 에너지를 보여주다가 금세 좌절당하죠. 가장 마지막에 그려낸 듯한 외곽선에서는 불안정함이 느껴집니다. 길 잃은 욕망을 식별 가능한 외곽선으로 붙들려는 것만 같죠.






2년 전 영국 패션 브랜드 사하라(Sahara)와 여성의 날을 맞아 나눈 인터뷰에서 작가는 여성 작가로서 창작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편견에 대한 질문에 “매일이 끊임없는 협상(My practice is constantly negotiating daily life)”이라며 “완벽하게 흘러간 시기 같은 건 없었다(There has never been a period of complete flow)”고 덧붙입니다.


홀로 세 아이를 키우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의 삶은 산뜻함과 거침, 폭발하다가 이내 뭉개지는 터치와 떨리는 외곽선이 담긴 작가 본인의 그림과 닮아 있는데요. 그녀의 그림에 매료되는 것은 130여 년이 흐른 시점에도 <테스>가 읽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시대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았던 여성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요.


📷 Elaine Speirs

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