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꼭 알고 가야 할, 미술계가 주목하고 있는 현대미술작가 6인
트렌드올해는 프리즈 아트페어, 키아프, 부산비엔날레 등 굵직한 국제적 미술행사를 비롯해 국내 크고 작은 전시와 소식들로 미술계가 북적였던 한 해였습니다. 난트 매거진(@nant.magazine)도 주목할 만한 이슈들을 부지런히 전해드렸는데요! 그중에서도 미술시장에서의 인기나 투자적 가치가 아닌, 국내 전시 소식들을 돌아보면서 눈에 띄는 현대미술작가들을 꼽아보았습니다. 미술계가 주목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자주 마주하게 될, 그래서 지금이라도 꼭 알고 가야 할, 혹은 이미 알고 있더라도 복습할수록 좋을! 현대미술작가 6인 양혜규, 이미래, 아니카 이(Anicka Yi), 로사 로이(Rosa Loy), 로르 프로보(Laure Prouvost), 알리시아 크바데(Alicja Kwade)를 소개합니다.
‘세계 100대 작가’에 선정된, 양혜규
양혜규, Sonic Intermediates Series, 2021, 출처 SMK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작가로 꼽히는 양혜규 작가. 조각, 평면, 설치 등 여러 매체를 아우르며 시각과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을 일깨우는 작품 세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서울과 독일을 오가며 전통과 현대, 사실과 허구, 일상과 비일상의 접점에 관심을 두고 있는 그의 작품은 어떤 한 단어나 주제에만 속하지 않습니다. 다채로운 소재 중에 특징적인 것은 다양한 문화권의 민족신앙에서 볼 수 있는 ‘방울’인데요, 작품들은 움직일 때마다 소리를 내며 독특한 청각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양혜규 작가는 얼마 전 독일의 경제전문지 <캐피탈(Capital)>이 미술사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선정하는 세계 ’100대 작가’ 중 93위에 오른 소식이 알려져 관심을 모았는데요, <캐피탈>의 100대 작가 명단은 매년 전 세계 현대미술작가들을 대상으로 미술사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작성됩니다. 미술관에서의 개인전, 미술관의 작품 소장 건수, 국제적 미술행사 참여도, 평론 등을 종합하여 기준으로 삼는 만큼 미술시장과는 다른 관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양혜규 작가는 <캐피탈>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유일한 한국작가로 이름을 올려, 그의 영향력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선택한 설치미술 작가, 이미래
(좌) 2022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전시 전경 - 이미래, 엔드리스 하우스, 출처 ELLE
(우) 2022 부산비엔날레 전시 전경 - 이미래, 구멍이 많은 풍경: 영도 바다 피부, 2022, 출처 부산비엔날레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되어 이목을 끌었던 이미래 작가. 행사에서 전시했던 살아있는 생물의 내장과도 같은 도발적이고 생생한 작품이 해외 미술전문지 <아트 뉴스(ARTnews)>에서 꼭 기억해야 할 작품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2년마다 이탈리아에서 개최되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 미술 행사입니다. 국가별로 각자의 주제로 나뉘어 진행되는 국가관 전시와 달리 다르게 총감독이 특정 주제로 꾸리는 본전시는 다양한 국적의 현대미술작가들이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에 초대되었다는 소식 자체만으로도 이슈가 되는데요, 올해 한국작가로는 이미래 작가와 정금형 작가가 초대되었습니다.
이미래 작가는 본전시에서 고무호스와 여기저기 구멍 나 걸려 있는 조형물, 끈적한 액체가 흐르는 작품으로 몸체의 구멍을 통해 물질이 순환하는 모습을 표현했는데요, 생물체 또는 그것의 장기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며 강렬한 인상을 전합니다. “세계와 자기 사이에 보호막이 없는 엄청나게 취약한 존재들이 오히려 강할 수 있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시멘트, 레진 등 거친 재료들과 액체를 통해 여러 촉각을 자극하는 그의 작품이 올해 부산 비엔날레에서는 대규모 설치로 펼쳐졌습니다. 부산 영도의 폐공장으로 오래된 건물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장소에 구멍 난 공사 가림막을 내건 야외 설치는 바람에 흔들리며 독특한 광경을 선사했습니다.
분야를 뛰어넘은 실험적 현대미술작가, 아니카 이(Anika Yi)
영국 테이트미술관 터빈홀 설치 전경 - 아니카 이, In Love With The World, 2021 (출처: 작가 홈페이지)
아니카 이, Lapidary Tea Slave, 2015, 출처 작가 홈페이지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어 움직이는 기계와 박테리아, 냄새까지 다루는 아니카 이. 작년 영국 테이트미술관 터빈 홀에서 전시된 작품은 해외 매체가 앞다퉈 보도한 바 있습니다. 터빈 홀은 폐발전소 건물을 개조한 곳으로, 현대미술작가들에게는 꼭 한 번쯤 전시해 보고 싶은 도전적인 곳입니다. 매년 작가를 선정해 특별 전시를 개최하며, 전시 소식 자체만으로도 주목을 끄는 공간인데요, 전시 소식 그 이상의 관심을 끌었던 아니카 이의 작품은 관람객의 움직임을 감지해 모이고 흩어지는 모션이 반복되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보였습니다.
움직이는 키네틱 작품만큼이나 독특했던 것은 전시장을 채운 특유의 냄새였습니다. 전시장이 위치한 지역의 역사를 담아 작가가 직접 만든 냄새는 공기의 존재를 느끼게 하기 위한 요소였는데, 이 냄새를 통해 모든 생물체가 서로 연결된 풍경을 구현하려 했다고 해요.
작가는 올해 5월 글래드스톤 서울에서도 흥미로운 작품으로 국내 첫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미세한 해조류가 살고 있는 플라스크, 꽃을 튀겨 보존처리한 작품들 등이 흥미를 모으기 충분했습니다. 특히나 역사 속에서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 향수 작업은 땀, 박테리아, 흑사병 치료제 냄새 등을 작품의 일부로 선보여온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좋은 작업이었는데요, 공기와 냄새에 대한 작가만의 실험적 언어는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을 전합니다.
전통 순수 회화의 부활, 로사 로이(Rosa Loy)
(좌) 갤러리바톤 로사 로이 개인전 전경, 출처 갤러리바톤
(우) 로사 로이, Dammerung, 2022, 출처 갤러리바톤
회화의 부활을 이끌었다 평가받는 ‘신 라히프치히(NLS: New Leipzig School)’ 화파의 대표 작가 로사 로이. 신 라이프치히 화파는 1989년 독일 통일 이후 독자적으로 부상했으며, 동독의 구상 화풍과 서독의 추상 화풍이 더해져 몽환적이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구성이 특징입니다. 특히나 로사 로이의 그림 속 초현실적인 시공간과 섬세한 묘사는 역사와 환상을 함께 다룰 뿐 아니라 신화적 상징을 가득 담고 있어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그림 속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여성은 작가 자신이자, 친구 혹은 또 다른 자아이기도 한데요, 인물을 쌍둥이처럼 쌍으로 그림에 등장시켜 여러 이야기를 담고, 이는 곧 여성의 연대에 대한 동경을 드러냅니다.
유화나 아크릴 같은 일반적인 물감이 아닌 프레스코 벽화에 사용되는 우유 단백질 성분의 카제인이라는 물감을 쓰는 것도 그만의 독특한 방식입니다. 피렌체 성당 벽화를 본 후 매료되어 이 기법을 고집하고 있는데, 오일을 섞는 등 재료를 다루는 과정을 연금술과 같다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인 네오 라우흐와 함께 작년 스페이스 K에서 2인전으로 주목을 받았던 그가 이번엔 갤러리바톤에서 12월 27일까지 개인전을 선보입니다.
호기심 가득한 세계, 로르 프루보(Laure Provost)
로르 프루보, 심층여행사, 2022, 출처 아뜰리에 에르메스
개념미술가 로르 프루보는 허구와 실재가 뒤섞인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작가의 이야기는 설치, 영상, 퍼포먼스, 조각, 회화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펼쳐지며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올 3월, 국내 첫 개인전이었던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심층 여행사>에서는 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전시장의 모습은 현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여행사 사무실이지만 작가의 상상 속에서 비롯된 공간이기 때문에 감자로 만든 콘센트, 모니터의 장난스러운 낙서 등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낯선 오브제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높이 120cm, 폭 80cm의 작은 문을 통해야만 볼 수 있는 전시의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고요, 개념미술을 하기 위해서 영국에서 아프리카까지 땅굴을 파다 실종된 할아버지, 크리스마스 가족 모임 때마다 여행사를 세우겠다고 큰소리치던 아저씨가 ‘심층’이라는 목적지를 내세운 여행사 가맹점 등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유머러스한 혼돈을 선사합니다. 이성적 사고, 재화 같은 현실의 기준을 벗어나 약간의 틈을 만들고,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게 하는 그는 2013년 비 영국인으로서는 처음 터너상을 수상,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 국가관 전시 등을 통해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물리학과 예술의 경계에서, 알리시아 크바데
(좌) 알리시아 크바데, ParaPivot (sempiternal clouds), 2020, 출처 작가 홈페이지
(우) 알리시아 크바데, ParaPivot, 2019, 출처 작가 홈페이지
(좌) 알리시아 크바데, Trans-For-Men 6, 2019, 출처 작가 홈페이지
(우) 알리시아 크바데, Duodecuple Be-Hide, 2020, 출처 쾨닉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묻는 설치미술가 알리시아 크바데. 폴란드계 독일 작가 알리시아 크바데의 국내 첫 개인전이 올 초 쾨닉 서울과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서 동시에 개최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이에 전시가 일주일 연장되기도 했습니다. 조각과 설치로 시공간과 물질에 대해 풀어내는 그는 우리의 인지 방식과 움직임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사물을 보는 관점에 따라 그 본질이 달라질 수 있음을 표현하는 거울과 돌을 활용한 작업은 평행 세계를 연상시키며 현실의 불안정과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흔듭니다.
물리적 법칙들을 다시금 인식하도록 우리의 인식에 균열을 일으키는 작가의 작품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 뉴욕 센트럴 파크 등 세계 곳곳의 야외 설치물로도 광범위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점점 더 그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 주제, 소재의 작품으로 여러 방면에서 흥미로운 소식들을 전하며 우리를 즐겁게 했던 작가들. 내년에는 어떤 활동을 이어 나갈지 기대됩니다. 작가와 작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미술시장과 미술관, 갤러리, 국제행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관점으로 현대미술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매번 다채로운 소식이 끊이지 않고,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이겠죠! 또 어떤 이슈들로 올해가 마무리될지, 내년에는 어떤 작가의 소식으로 시작될지, 앞으로도 난트 매거진이 전해드리는 현대미술 이야기들을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