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림은 유명해서 비쌀까, 비싸서 유명할까?

칼럼


미술 작품의 가격을 만드는 요소들


좋은 작품이 반드시 비싼 건 아니고, 비싼 작품이 좋은 작품인 것도 아닙니다. 미술 작품 가격은 시기마다 천차만별인데, 그 기준을 정하기 힘들고 가격이 형성되는 요인도 복잡합니다. 미적 가치와 투자 가치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희소가치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은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인데요, 당연히 인기가 많을수록 비쌀 수밖에 없는 법! 하지만 인기 있고 유명한 작가들 사이에서도 작품 가격은 다 다르던데, 도대체 미술작품 가격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서울옥션-경매


서울옥션 경매 현장 / 사진 서울옥션



작가가 정한 가격 ≠ 재판매되는 가격


작가의 신작 공개, 개인전과 함께 작품의 유통이 처음 시작되는 1차 시장에서는 보통 작가가 갤러리와 의논해 가격을 정하는데요, 작가의 전시 이력, 판매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합니다. 작품 제작에 들어간 비용도 고려하고요.


작품이 재판매되는 2차 시장에서는 판매자가 가격을 정합니다. 경매에서는 여러 구매자의 입찰 경쟁으로 최종 가격이 정해지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지만 경매 시작가는 작품 위탁자와 경매사가 함께 정하는데요, 이때는 작품의 상태, 출처, 미술사적 가치 등이 추가로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이 얼마나 거래되어 왔는지, 직전 경매 기록은 어땠는지, 현재 주목할 만한 이슈가 있는지 등도 참고됩니다.



큰 작품이 비싼 작품일까?


작품에서는 크기와 재료 등의 형식도 함께 고려되는 사항입니다. 무조건 크다고 비싼 것은 아니고요, 실내에 걸 수 있는 정도의 사이즈 수요가 높아요. 이런 실용적인 이유뿐 아니라 그 형식에서부터 비롯되는 특별함이 있다면 작품 가치에 반영됩니다. 김환기 작가의 ‘우주’는 2019년 경매에서 132억 원에 낙찰되어, 한국미술품 경매 최고가이자 최초로 100억 원을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깊은 색과 경지에 이른 독보적 아우라로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추상화 작업 중에 ‘가장 큰’ 규모이자 ‘유일하게’ 캔버스 두 개를 나란히 붙인 형식의 작품이라는 소개가 강조되었습니다. 이처럼 작품의 형식도 희소성을 높이는 근거가 될 수 있어요.


김환기:이우환


(좌)1971년 작, 김환기의 ‘우주’는 한국미술품 중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크기는 254x254cm / 사진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우) 2021년 23억 5천만 원에 낙찰된 이우환 작가의 1982년작 ‘선으로부터’. 그의 작품 중에 붉은 색이 드문 데다 크기도 182.6×226.5cm로 큰 편이고, 유화로 제작된 대부분의 작품과 다르게 아크릴 재료를 사용한 점이 특이성으로 주목을 끌었다. / 사진 서울옥션



작가가 죽으면 작품 가격이 오른다?


작가가 죽으면 작품이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으니 희소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인데요, 이 말이 꼭 맞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시기의 작품은 같은 작가의 것이라도 다른 작품보다 큰 가치를 지닙니다. 바로 작가의 스타일이 무르익은 전성기 작품들입니다. 때문에 이미 전성기를 보내고 다른 작업을 하고 있다면, 또 말년에 더 이상 작업을 못 하게 된 상황이라면, 전성기가 주목받지 못할 정도로 덜 알려진 작가들이라면 그 영향이 크지 않습니다.


꾸준히 인기가 많은 유명 작가들에게는 해당될 수도 있는데요, 작년 작고한 김창열 작가는 물방울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가 널리 인정받은 거장입니다. 작가는 거의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으며 신작을 내놨고, 그의 작품을 찾는 사람도 늘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사후 한 달 지나 열린 경매에서 2배 가까이 오른 가격에 낙찰되었고, 4개월 후에는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


김창열


김창열 작가의 작고 4개월 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출품된 작품 'CHS1'은 약 14억 3,000만 원에 팔려 작가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 사진 크리스티



작품에도 이력서가 있으면 좋을 텐데


작품의 가치에는 소장 이력도 영향을 미칩니다. 유명한 사람이나 믿을 만한 기관에 소장된 이력이 있는 경우 가치가 높아집니다. 진품이고 관리가 잘 되어 있다는 믿음과, 소장자의 안목에 대한 믿음, 그리고 소장자의 이름값이 프리미엄이 되거든요.


그래서 경매사에서는 일부러 판매할 작품의 소장자 이름으로 경매를 열고 홍보하며, 그 인물에 대해서도 소개합니다. 작품의 가치를 완성하는 것은 컬렉터이기도 해요. 누가, 왜 구매했는지, 왜 다시 판매하는지 등의 이야기가 가치에 영향을 더하기도 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유명 컬렉터가 된 BTS RM의 소장품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입니다. 이건희 컬렉션에 속한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관심을 더 많이 얻게 되었어요. 유영국 작가는 이건희 컬렉션 중 단일 작가로는 가장 많은 수인 187점의 작품이 소장된 작가인데요, 순회전과 RM의 관심에 힘입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국제갤러리에서 작고 20주기 기념전도 열리고 있고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끼친 영향이 큰 것에 비해 가격이 저평가되어 있다는 평이 있었는데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지켜볼 만합니다.


유영국:RM 복사


(좌)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단일 작가로는 가장 많은 수인 187점의 작품이 소장된 유영국 화가의 대표작 '산'(1968) / 사진 조선일보

(우)대구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전시 중 유영국 작가 작품 관람 중인 RM / 사진 BTS 트위터



작가의 평판과 작품성!


‘~의 선구자’, ‘~의 대표 작가’ 등의 표현이 유명 작가의 수식어로 쓰이는 것을 본 적 있지 않나요? 미술사적 평가가 높은 작품이 꼭 가격도 높은 것은 아니지만, 작품 가격 형성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사 속 중요한 역할을 한 의미를 생각하면, 이우환 작가의 작품 가격이 몇 십억 원을 넘어도 비싼 게 아니라는 겁니다. 피카소의 작품은 아주 작은 스케치까지 중요하게 다뤄지니까요.


지금까지 작가에 대해 얼마나 기록되고 분석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신력 있는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또는 영향력 있는 비평가나 기자, 큐레이터가 작가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도 미술사적 가치 형성에 중요한데요. 그런데 이러한 평가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며 재평가되기도 합니다.


이제는 단색화의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는 정상화 작가의 1983년 첫 개인전 반응은 “벽지 같은 그림을 누가 돈 주고 사겠느냐?”였고요, 김환기 작가는 1964년 첫 개인전에서 뉴욕 타임스 기자로부터 “갑갑한 느낌”이라는 혹평을 들었습니다. 2020년 낙찰가 톱 10 중 정상화는 6위, 김환기는 3위를 기록한 것을 보면, 이제는 황당하게 느껴지는 평가입니다.


김환기정상화 복사


(좌)김환기, 1971년 뉴욕에 위치한 자신의 아뜰리에에서 / 사진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우)정상화 작가의 1974년 작 ‘무제 74-F6-B’ 캔버스에 유채, 226×181.5cm. 단색화만 고집하던 그의 나이 55세 때 그림이 처음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우환 작가는 그를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 꼽았다. /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그 외에 향후 가치 상승 가능성과 현금화가 유리한지도 작품 가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핫한 이슈와 홍보 마케팅 때문에 작품 값이 금세 훌쩍 뛰는 경우도 있어서, 거래가 되는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반짝 떴다가 잊히는 경우도 있으니 때로는 천천히 지켜봐야 할 필요도 있어요. 정말 많은 요소들이 뒤엉켜 작품의 가치와 연결되고 작품마다 가격의 근거가 다 다르니, 이해하려면 알아야 할 것도 많아요.


언제나 작품 가격의 높은 숫자와 단위가 가장 큰 주목을 받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전부가 아닙니다. 작품의 가치를 표현하는 수단 중 눈에 띄는 것일 뿐이죠. 사실 가치를 매기기 위한 모든 노력들은 작품에 대한 마음에서 출발하는 게 아닐까요? 그 마음은 값을 매길 수 없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면서도 묘한 미술 시장의 매력입니다.


고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