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들은 평등했다
전시 소개2년마다 돌아오는 2024 #부산비엔날레(@busanbiennale)가 8월 17일부터 10월 20일까지 67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부산을 시작으로 대구, 광주,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비엔날레가 열리는 해인데요. 그 포문을 연 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라는 주제처럼 짙고 깊은 심연 속에 빠져볼까요.
이번 부산 비엔날레의 주제는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해적 계몽주의’에서 출발합니다. 소설 <보물섬> 속 교활한 해적 롱 존 실버는 원래 영국 해군에서 복무한 군인이었습니다. 실버처럼 18세기 카리브해와 인도양을 항해한 해적 중에는 영국 노동계급 출신 말단 군인들이 많았죠. 이 점에서 착안해 그레이버는 해적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원시 민주주의 조직을 이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유작 <해적 계몽주의>는 음지에서 움튼 민주주의를 주목하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인류학을 180도 바꿔놓는 사건이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우리가 관습적으로 ‘빛’이라고 여기는 유럽의 계몽주의에서 벗어나 관용적이고 자유로운 평등사회를 이뤘던 해적 유토피아에서 어둠 속에서 바라본 암흑의 역사를 읽어냅니다. 이는 피난민부터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노동자들, 즉 부산의 디아스포라와 연결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다양한 환경의 작가들이 돋보이는데요, 36개국 78명의 작가들이 작품 349점을 #부산현대미술관(@moca_busan), #부산근현대역사관(@bmch_museum), #한성1918(@hansung1918), #초량재(@choryangjae) 총 4곳에서 선보입니다.
2024 부산비엔날레 대표 작가로 선정된 #방정아(@jeong.a.bang) 작가는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로,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초현실적인 리얼리즘 회화로 소외되고 사라지는 것들을 담아내며 현실 문제를 풀어내고 있죠.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신작 3점을 공개한 방정아는 나한, 반야용선과 같은 불교적 모티브를 작가만의 따스한 시선으로 풀어냈는데요, 생태계 안에서 인류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듯합니다.
한성 1918에서 상영되는 #홍진훤 의 ‘멜팅 아이스크림’(2021)은 수해를 입은 민주화운동 당시의 필름을 복원하면서 ‘이미 완전히 승리한 민주화’를 역사화하려는 욕망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된 비디오 작업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현대사회의 민주주의는 과연 진리일까요? 민주주의의 영웅들이 삭제한 새로운 가능성을 홍진훤은 비판적인 시선으로 가시화합니다. 이시카와 마오는 오키나와가 겪은 고난의 역사를 대형 두루마리로 표현한 시리즈 ‘대 류큐 사진 두루마리 파트 10’(2023)을 선보입니다. 사쓰마 가문이 류큐 왕국을 침략한 후 미군이 점령하기까지 지역의 역사를 300m가 넘는 길이로 제작해 역사에서 외면당했던 오키나와 사람들의 태도와 감정, 역사적 기억을 에피소드로 풀어냅니다.
그런가 하면 관람객들이 완성해 나가는 작품들도 있는데요. 비인간과 소외된 이들의 연대와 공생을 탐구해 온 설치미술가 홍이현숙의 ‘야행’은 관람객이 직접 암흑 속에서 작가의 피난처를 찾아가는 행려자가 되어 완성하는 작품입니다. 네덜란드와 이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예술가 골록흐 나피시는 자신이 여행한 도시의 현지 수공예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이어지는 도시들’을 선보이는데요, 부산에서의 경험을 새로운 지도로 만들기 위해 관람객과 함께 5차례의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밝은 곳에서 캄캄한 곳으로 가면 일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한참 서 있으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그 속에 있던 것들이 보이게 되죠. 어떤 사실을 깨닫거나 느끼는 걸 우리는 ‘안다’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사실과 진실을 구분 짓는 데에는 특정한 관점이 포함됩니다.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이 세계를 진실로 아는 걸까요? 어둠을 주목한 작가들을 부산 비엔날레에서 만나보세요.
《2024 부산비엔날레》
• 2024.08.17 ~ 2024.10.20
• 부산현대미술관, 부산 근현대역사관, 한성 1918, 초량재
Editor. 박현정
Image. 부산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