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이 어려운 당신을 기꺼이
전시 소개미술관에 갔다가 당혹감을 느낀 적이 있다면, 스페인 이비자의 #개더링(@gathering.london)에서 열리는 전시《Painting not Painting》에 주목할 것. ‘그림 그리는 게 그림 그리는 게 아니야’ 쯤으로 번역되는 엉뚱한 제목은 이 전시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스테판브뤼게만(@stefanbruggemann1975)과 #브뤼스나우만(Bruce Nauman)의 작품이 한데 어우러진 이 전시는 현대미술에 느끼는 당혹스러움을 전면에 이용합니다.
제목이 없는 브뤼게만의 작품은 그 안에 쓰인 문구에 실소를 터지게 합니다. ‘난 침대에서 아내를 만족시키는 법을 알아’라는 문장 때문이죠. 동시에 뒤편에 펼쳐진 ‘idea’의 사전적 정의는 고심해서 아이디어를 펼쳐내던 이가 성적 충동에 불쑥 일어나는 모습을 연상시키다가도, 동시에 해당 문장을 부연하는 각주처럼 읽히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White Noise>라는 작품은 ‘Fear Context(맥락을 두려워하며)’라는 부제가 붙었는데요. 빨간 스프레이로 거칠게 갈겨진 문장을 사뿐히 덮은 금박은 본래 쓰인 글을 궁금하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진짜 금일까’하며 원초적인 질문을 유도하죠. 어느 쪽이든 갈피를 못 잡게 만듭니다.
소통의 수단인 문자로 장난을 치기는 나우만도 마찬가지. 디지털 스텐실 인쇄인 리소그라프로 작업된 작품 <NO>는 단지 언어처럼 보인다는 것만으로 관람객을 주춤하게 합니다. 곧 작품이 아닌 도로표지판 같은 역할을 해 버리죠. 아마 가장 우리를 멋쩍게 하는 작품은 <Ah Ha>일 텐데요. 좌우로 시선을 던지게 되는 작품은 마치 우리가 잘 몰랐던 무언가를 수긍할 때 내뱉는 감탄을 닮아있죠. 한편 단순히 서로의 반영인 양 보이는 문자열은 그저 심미적 대칭을 활용한 장난으로도 보이고요.
두 작가의 작품은 보이는 그대로의 외양과 이를 해독하려는 시도 양쪽을 가뿐히 저지합니다. 모든 일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 타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통에 핵심을 놓치고, 때로는 지나친 과잉해석에 유머를 상실하고 맙니다. 브뤼게만의 작품에서 도금된 표면만을, 나우만의 작품에서 머리를 긁적이는 저처럼요. 두 작가는 겉모습과 의미 사이에서 종종 길을 잃는 우리를 기꺼이 맞이합니다.
𝘗𝘢𝘪𝘯𝘵𝘪𝘯𝘨 𝘕𝘰𝘵 𝘗𝘢𝘪𝘯𝘵𝘪𝘯𝘨
∙ Stefan Brüggemann and Bruce Nauman
∙ Carrer Vicent Serra, 4, 07815 Sant Miquel de Balansat, Illes Balears, Spain
Editor. 성민지
Image. Stefan Brüggemann, Bruce Nauman, Gathering, M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