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의 슬픔이 담긴 푸른 인간의 초상. 이효선 작가의 영감

인터뷰

우연한 계기로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사용한다는 사소한 이유만으로 누군가가 특별해지기도 하죠. 작품이 좋아서 작가가 궁금해지거나, 작가가 좋아서 작품이 좋아지거나. 순서가 어떻든 상관없어요. 작가의 취향을 알고 나면 그의 작품도 새롭게 다가올 거예요.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하는지, 작가로서의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이효선 작가는,


인간 모든 감정의 이면에는 ‘슬픔’이 있다고 믿는 사람. 사랑하는 이와의 행복한 시간에 눈물 흘리기도, 그리운 시절을 추억하며 뭉클함에 젖어들기도,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눈물을 쏟아내기도 하는 우리의 감정을 헤아리며 감정의 귀결점인 ‘슬픔’을 푸른 인간 초상으로 담습니다.

(좌) 이효선 <메마르지만 광활한 사막> 혼합재료, 12.5x17cm, 2020
(우) 이효선 <모두 어떤 시점에서는> 혼합재료, 12.5x17cm, 2021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하루의 작업


Q1. 작업을 시작하기 직전의 작가님이 궁금합니다. 작업 시작 전 루틴이나, 마음을 가다듬거나 집중을 위한 것들이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작업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녁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작업에 도움이 될만한 다른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장시간 앉아 작업을 하다보면 힘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정해진 시간동안은 엉덩이를 붙이고 일어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항상 즐거운 일이어서 마음을 가다듬거나 결심을 하는 과정 없이 자연스럽게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Q2. 작업하면서 즐겨 듣는 음악이 있다면, 몇 곡 추천해주세요.


보통 작업을 하면서 음악을 듣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참 빠졌던 노래는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이었습니다. 영화 ost도 종종 듣는데요, 최근에는 자크 드미 영화를 인상 깊게 봐서 <로슈포르의 숙녀들(1967)>과 <쉘브르의 우산(1964)>에 나왔던 ost를 즐겨 들었습니다.

(좌) 영화 <로슈포르의 숙녀들> 중 한 장면
(우) 자크 드미와 그의 부인 아녜스 바르다

감정을 들여다보는 시간


Q3. 작가님의 작업에 영감이 되는 것이나 영향을 주었던 것 중 몇 가지를 소개해 주세요.


저는 주로 문학책에서 작업 영감을 많이 얻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읽었던 글귀, 이미지를 구상하는 시기에 겪는 가장 인상 깊은 경험, 그리고 여러 감정들에 집중을 해서 이미지를 만들어 나갑니다.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 소설을 굉장히 좋아해서, 제 작품 속에도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디테일한 서사들을 담는 것을 좋아합니다. 최근에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은 르 클레지오의 <사막>과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입니다.

(좌) 에밀졸라의 초상화
(우)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Q4. 요즘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이미지가 있나요?


요즘엔 알렉스 카츠의 작품을 많이 봅니다. 그리고 역사를 좋아하는데, 기록화나 기록사진을 보는 게 재밌습니다. 손과 손이 맞잡아지는 여러 형태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스페인독감이 창궐했던 1918년 미국의 시애틀의 모습을 담은 기록 사진 ⓒ U.S. NATIONAL ARCHIVES

Q5. 앞서 얘기해 주신 내용을 보면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역사는 인간의 삶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탄생하는, 인간이라면 겪을 수 있는 감정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한 개인의 일생 동안에는 절대 모두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요.


Q6. ‘손과 손이 맞잡아지는 형태’가 흥미롭게 느껴지는데요, 더 이야기해 주세요.


요즘 하고 있는 작업 내용과 관련이 있는데요, 손은 두 번째 심장과도 같아서 손과 손이 맞닿아진다는 것은 마음과 마음이 닿는 것과 같다고 해요. 손과 손이 맞닿는 다양한 형태를 그림으로 그리며 마음의 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두 손을 맞대어 기도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희망하기 때문이고, 그이의 손 위로 손을 포개는 것은 그 마음으로 그이를 느끼기 위해서겠죠.


“더 짙게, 더 깊게. 손가락 사이로 생긴 온기가 어떤 한 이야기의 마침표로 자리 잡을 때, 새로운 문장을 만들기에는 아직 아쉬워서 붙잡은 손을 한 번 더 맞잡아 본다. (…) 엉킨 손가락이 풀리지 않도록.” - 작가노트 중
이효선 <Palm to palm 01 - 바람이 부는 까닭>

슬픔에 관하여


Q7. 작품에서 슬픔의 여러 모습을 다루고 계신데요, 작가님의 일상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슬픔의 장면을 소개해 주세요.


일상의 모든 순간에 슬픔은 어느 정도 묻어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일상 속에서 제가 가장 많이 느끼는 슬픔은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기를 쓸 때나, 시끄럽던 소리들이 갑자기 고요해질 때인 것 같아요.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건들에서 흘러나오는 다양한 감정들이 사라지지 않고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Q8. 슬픔의 감정과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는 음식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베스킨라빈스 슈팅스타 맛 아이스크림에서 톡톡 터지는 ‘팝핑 캔디’라고 골라보겠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터지냐에 따라서 느껴지는 것이 다양하기 때문에 슬픔과 닮은 것 같아요.


이효선 작가의 <영감 상자>


  •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
  • 자크 드미 <로슈포르의 숙녀들>과 <쉘브르의 우산>
  • 에밀졸라의 자연주의 소설
  • 르 클레지오의 <사막>
  •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
  • 벌거벗은 세계사, 벌거벗은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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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