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작품 속 밤은 내적 사유와 안식을 주는 역할이자, 은둔과 포용의 시간으로 볼 수 있다. 어둠이 지배하는 시간은 시야가 제한되고 외부 자극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외부 세계로부터 물러나 내면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밤'은 자아를 성찰하고, 깊이 있는 사색을 하며, 외부의 소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은둔'의 이미지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또한, 서서히 내려앉은 어둠은 필요한 것들만 남긴 채 다른 것들은 고요히 덮는다. 대상과 대상을 선명하게 구분 짓지 않고, 모호한 경계를 통해 공명하도록 한다.
사건 당시의 강렬한 경험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렴풋한 '감정의 표상'으로 남게 되는 것에 주목한다. 초기의 선명했던 기억은 개인의 감각과 감정을 통해 배열되고 여과되어 새로운 형상으로 남게 된다. 이처럼 기억은 현재의 감정 상태와 주관적 해석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동적인 현상이다. 피어나고, 점멸하고, 공명하는 등의 유기적 형상은 '감정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양'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그려내고 닦아내는 반복적 수행은 '기억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방식'을 표현하려는 시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