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인도의 찬디가르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유니테 다비타시옹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 인도의 찬디가르
어떤 도시는 그 자체로 이상을 담은 선언입니다. 건축이 사회를 바꾸는 언어가 된다면, #찬디가르 프로젝트는 그 문장 전체를 새로 쓰려 했던 야심 찬 도시 계획이었죠. 그리고 이 기나긴 여정의 출발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까지에는 디자인 역사를 가로지르는 위대한 두 설계자가 있었습니다.
(좌)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찬디가르 주의회의사당
(우)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펀자브 및 하리아나 고등법원
시대가 새로운 질서를 원할 때, 건축은 단순히 벽과 지붕을 세우는 기술을 넘어 인간과 사회, 정치와 철학을 엮는 고차원적 수단으로 등장합니다. 20세기 중반,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하면서 파키스탄으로 이양된 수도 라호르를 대신하기 위해 인도 정부는 국가의 미래상을 담은 새 행정 도시를 구상하는데요. 자주적이고 현대적인 도시, 찬디가르가 탄생하게 된 순간입니다.
(좌) 르 코르뷔지에의 모더니즘 건축 양식으로 설계된 펀자브 대학교의 학생 센터
(우)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해 찬디가르의 캐피탈 컴플렉스에 세워진 상징적인 구조물, 오픈 핸드 기념비
인도 정부는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건축계에서 가장 저명한 인사인 스위스-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를 찬디가르 계획도시에 마스터플래너로서 초빙합니다. 그의 사촌이자 오랜 협업자였던 ‘피에르 잔느레(pierre jeanneret,1896~1967)’가 합류하면서, 찬디가르는 곧 근현대 건축의 두 거장이 하나의 도시를 무대로 자신의 건축적 이상과 역량을 온전히 펼쳐내는, 전례 없는 창작 실험의 현장이 되었죠.
(좌)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펀자브 및 하리아나 고등법원
(우)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찬디가르 주의회의사당
르 코르뷔지에는 도시를 인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는데요. ‘모듈러’라는 신체 비례 기반의 체계를 바탕으로 도시 구역을 구성하고, 국회의사당과 고등법원, 장관 청사 등 주요 건축물에 일관된 조형 언어를 부여했습니다. 그의 설계는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며, 기능과 조화를 함께 고려한 미래 도시상의 청사진이었죠.
한편, 피에르 잔느레는 이 대서사의 실질적 구축자였습니다. 그는 찬디가르에 무려 15년간 머물며 프로젝트 완료에 책임을 다했고, 건축은 물론 지역 장인들과 함께 일상에 밀착된 가구도 설계했는데요. 그중 찬디가르 국회의사당 등 공공시설에 배치되었던 ‘캐피탈 콤플렉스 체어(Capitol Complex Chair)’는 잔느레가 강조해 온 ‘재료의 진정성’ 그리고 ‘현지성과 국제주의의 융합’을 시사하는 작품인데요. 오늘날까지도 이 디자인 피스는 전 세계 컬렉터들 사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의자 중 하나로, 찬디가르라는 도시를 가구 하나로 상징하는 오브제가 되었습니다.
찬디가르는 한때 근대 건축의 유토피아로 불렸지만, 오랫동안 잊힌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 정신과 잔느레의 조형 감각은 도시에 고스란히 남아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디자이너들에게 살아 있는 텍스트가 되어주고 있죠.
그들의 작품을 직접 걷고, 앉고, 마주하는 경험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 하나의 조형 교육이 될 수 있는데요. 찬디가르를 찾는 일은 말하자면 두 위대한 설계자가 한 도시에 써 내려간 이상과 미학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Editor. 전지은
Image. Chandigar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