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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뻔한 공장을 세계가 주목하게 만든 힘, 마루니의 디자인


사라질 뻔한 공장을 세계가 주목하게 만든 힘

: 품위가 아닌 생존을 좌우하는 디자인



한 브랜드가 쇠퇴하기 시작할 때, 디자인은 종종 생존을 위해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할 요소로 선택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 판단은 시간이 흐른 뒤 꽤 높은 확률로, 브랜드가 회복하기 어려운 혹독한 대가로 돌아오곤 하죠.


디자인이 구매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는 보편적인 공감대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브랜드의 생존과 전략을 논하는 자리에서 그 우선순위가 밀려나기 일쑤인데요. 디자인의 특성이, 즉각적인 수치를 근거로 회의를 주도하는 기획·영업·마케팅과 같은 부서와의 충돌에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탓이죠.


이 안타까운 구조는 디자인을 당장의 비용으로만 해석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데요. 디자인에 대한 투자는 분명 추가적인 비용을 발생시킵니다. 그 때문에 많은 브랜드가 눈에 보이는 효율과 성과를 먼저 고려하는 것이죠. 디자인은 결국 경쟁력을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니라, 여유가 생겼을 때 다시 꺼내보려는 밀린 숙제 정도로 취급받게 됩니다.


이 흐름과는 다른 선택으로 브랜드의 미래를 바꾼 한 사례가 있는데요. 일본 히로시마에서 출발한 #마루니(@maruni_global)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나오토 후카사와가 마루니를 위해 디자인한 시로시마 암체어와 라운디시 암체어



1933년 설립된 마루니는 오랜 시간 뛰어난 목공 기술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가구 제조사였습니다. 정교한 가공 능력과 안정적인 품질은 이미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었지만, 그 기술은 주로 OEM과 하청 구조 안에서 소비되며 브랜드의 가치로 축적되지는 못했죠. ‘가구를 잘 만드는 회사’였지만, ‘마루니이기에 선택받는 브랜드‘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하자 이 한계는 더욱 분명해집니다. 기술력만으로는 가격 경쟁과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춘 기업들과 맞서기 어려웠고, 마루니 역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우리가 가진 경험과 노하우는 왜 브랜드의 힘으로 전환되지 못하는가.“


이때 마루니가 택한 해법은 생산 효율의 강화나 원가 절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가진 기술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인식시킬 것인가에 대한 방향 전환이었죠.


그 중심에 디자인이 놓였습니다. 마루니는 후카사와 나오토(@naoto_fukasawa_design_ltd), 제스퍼 모리슨(@JasperMorrison)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으로 전통적인 목공 기술을 동시대적 미감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외형을 새로 꾸미는 작업만이 아니라, 마루니가 어떤 기준과 태도로 고객과 마주할 것인지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좌) 마루니(2024 밀라노 가구 박람회)
(우) 후카사와 나오토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보다 왜 만들어야 하는가를 묻기 시작했고, 각 부서의 판단 기준 역시 효율과 속도 중심에서 일관성과 완성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해 갔는데요. 나아가 디자인적 사고가 조직 전반으로 뿌리내리며, 마루니라는 고유한 DNA가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디자인이 더 이상 특정 부서의 역할이 아닌, 전사가 이해하고 사용해야 할 필수 언어가 된 것입니다.


이후 마루니는 더 이상 가격이나 생산력으로 비교되는 제조사가 아니었습니다. 디자인 중심 사고가 축적한 태도와 기준은 브랜드의 신뢰로 이어졌고, 마루니라는 이름은 ‘잘 만드는 제조사’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호명되는 브랜드‘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당장은 손실처럼 보였던 디자인에 대한 투자가, 사실은 브랜드를 먹여 살리는 영리한 전략이었음을 증명한 것이죠.


한 브랜드가 생명력을 얻기 시작할 때, 디자인은 단순한 비용 부담이 아닌 생존의 출발점으로 작용합니다. 마루니의 사례는 왜 이 시대의 브랜드가 현실을 말할수록 디자인을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지, 사라질 뻔한 공장을 세계가 찾는 브랜드로 거듭나게 한 결과로 답합니다.


Editor. 전지은

Image. maruni wood industry, elledecoration


#마루니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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