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먼지처럼 흩어질 파스텔화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 전시 전경
세상에 존재하는 빛깔을 고운 체에 걸러 뭉치면 파스텔이 됩니다. 몽환적이고 포근한 색과 질감이 매력적이지만, 동시대 작가들은 잘 쓰지 않는 재료인데요. 형형색색의 파스텔로 강렬한 세계를 표현하는 #니콜라스 파티(@nicolasparty)의 개인전 《더스트》가 #호암미술관(@leeummuseumofart)에서 진행 중입니다.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 전시 전경
구상회화는 평면이라는 한계 탓에 퍼포먼스 아트나 설치 등에 비해 현장감을 주거나 파격적인 실험을 하기 어렵죠. 이때, 재료는 방법론이나 표현적인 부분을 떠나 작가가 의미하는 바를 나타내는 주요한 수단이자 개성이 되기도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쓰기 시작한 파스텔은 18세기 여성들을 중심으로 사랑받으면서 ‘취미용 도구’라는 인식이 생겼는데요. 들라크루아, 밀레, 마네, 드가 등 거장들도 애용했던 것과는 달리, 파스텔을 사용한 동시대 작품이 적다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좌) 니콜라스 파티의 <Portrait with a Donkey> 2023
(우) 니콜라스 파티의 <Portrait> 2015
파티는 2013년 스위스 바이엘러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여인 초상화를 보고 파스텔에 푹 빠졌습니다. 이미지와 명암, 색채의 강렬함에 매료되었다는 그는 전시를 보자마자 파스텔 한 상자를 사 피카소의 초상화를 모작하며 자신만의 초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피카소의 작품을 만나기 이전에는 파스텔에 대해 잘 몰랐던 그는 처음으로 파스텔을 초상화에 도입한 로살바 카리에라의 작품을 연구하며 심도 있는 지식을 쌓았습니다.
(좌) 마그리트 미술관 《Magritte parti(2018)》 전시 전경
(우) 니콜라스 파티의 <Portrait with Snakes> 2019
과거의 유산에서 힌트를 얻어 발전해 온 파티는 작품에도 이러한 방식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파스텔화는 그림을 완성하면 유리나 아크릴 등으로 덮어 번짐을 막습니다. 반면 파티는 벽화를 통해 시간성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벽화는 그에게 의미가 깊은데요, 12살부터 그래피티를 그리기 시작해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할 정도로 매진했습니다. 대학에서는 영상과 그래픽디자인,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면서 퍼포먼스 아트, 설치 등 폭넓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경험했습니다. 그가 경험했던 그래피티, 영상, 공연 모두 시간성이 짙은 분야임을 쉽게 알 수 있죠.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 전시 전경
파티는 미술관 벽에 그림을 그리고, 전시가 끝나면 그림을 지웁니다. 이번 《더스트》도 용인에서 6주간 머물며 호암미술관 로비와 벽 위에 벽화 5점을 그렸습니다. 리움미술관의 고미술품을 샘플링해 벽화로 구현한 작품인데요, 동서고금의 문화적 상징이 교차하면서 문명과 자연에 대한 파티만의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예술이 시작된 ‘동굴’ 벽화 앞에 조선시대 왕손의 탯줄을 보관했던 ‘백자 태호’를 두어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먼지처럼 공기 중에 부유하는 파스텔 가루는 사라지고 말 옅은 경계를 의미합니다. 파티의 그림 속 인물들은 남자인 듯 여자인 듯 성별을 알 수 없고, 풍경은 현실과 가상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진 시간의 레이어 속에서 파티는 다양한 작가, 모티프, 양식, 재료 등을 자유롭게 연결해 독자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관객은 시대, 젠더, 옳고 그름, 음양 등 경계가 자연스레 섞인 채 문명의 시작과 끝, 시간, 자연의 순리를 마주하게 되죠. 파스텔 가루의 성긴 연결, 그 속에서 우리는 지속과 소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
- 호암미술관 첫 동시대 작가 전시, 작품 73점
- 2025.01.19 까지
- 호암미술관, 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562번길 38
Editor. 박현정
Image. Hauser & Wirth, 호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