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릭 오웬스의 가구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릭 오웬스의 가구

《릭 오웬스 가구: 녹은 잠들지 않는다》


삶에 대한 충동을 에로스, 죽음에의 충동을 타나토스라고 하죠. 현재 런던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carpentersworkshopgallery)에서 전시 중인 패션 디자이너 릭 오웬스의 가구는 둘을 한데 묶어 놓은 컬렉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그의 작품에 사용된 사슴뿔, 동물 모피, 5000년 된 나무 등은 삶과 죽음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몸에 묶어두죠. 자연에서 채집한 이들 재료를 그대로 부패하도록 두지 않고 개입함으로써 자연과 인위를 잇는 독특한 미학이 완성됩니다.


케이 플러그 테이블(K Plug Table)은 이음새가 없는 3미터가 훌쩍 넘는 커다란 탁자입니다. 장엄한 위용을 자랑하는 이 테이블은 강철 특유의 냉혹한 분위기를 드러내면서도 녹이 슨 부분으로 인해 아늑함도 느끼게 하죠. 청동이나 구리 같은 금속 표면에 가하는 의도적인 산화 처리를 ‘파티나(Patina)’라고 하는데요. 바로 이 파티나 공법으로 재료에 세월이 깃든 형세를 만들었습니다. 재료의 시간을 빨리 감기 하면서도, 일정 수준에서 시간을 정지했다고도 볼 수 있죠.




(좌) 릭 오웬스(Rick Owens), Stag Stool Black Plywood, 2009 & Tomb Chair Black Oak Right, 2012
(우) 릭 오웬스(Rick Owens), Double Bubble Steel Rust, 2025



케이 플러그 테이블이 장인의 손길로 재료에 새로운 시간을 선사했다면, 더블 버블(Double Bubble)은 인간의 개입이 아니면 만나지 못했거나 혹은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야 만났을 자연을 만나게 합니다. 폴란드의 흑림, 프랑스 마레 숲에서 채취한 나무를 조합한 건데요. 마감은 각각 악어가죽과 소가죽을 활용합니다. 옷이라면 소가죽 숄더백을 메고, 양가죽 무스탕을 입는 게 별다른 의식을 깨우긴 힘들 텐데요. 가구는 안락한 공간에서 몸을 파묻는 대상으로서 그 표면감을 확연히 느끼게 하죠.


서로 다른 땅에서 자란 폴란드와 프랑스의 나무는 언젠가 최소 수백만 년이 걸려야 석탄으로 만날 유기물이고, 나일강을 누비는 야생 악어와 가축화된 소가 살갗을 맞댄 장면을 보노라면 이들 넷의 만남이 희한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 생명체에게 죽음이란 주체성을 잃는 일이지만, 어떤 이야기는 그 지점에서부터 가능해집니다. 예술가의 몫이 그런 거겠죠.




(좌) 릭 오웬스(Rick Owens), PEDALÒ Rust, 2025
(우) 릭 오웬스(Rick Owens), Antler Bed, 2025



실제 릭 오웬스는 영원불멸의 상징인 피라미드 등 이집트의 고대 건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한 생명체의 몫을 초월하는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깊은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이죠.


뿔 침대(Antler Bed)에는 사슴 뿔 네 개가 커플을 내려다봅니다. 재활용 목재에 뿔을 더한 침대는 마치 척박한 환경에서 잠시 몸을 누이는 피난처처럼 보이기도 하죠. 이러한 침대에서 사랑을 나눈다면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완벽한 결합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의 가구에서 느껴지는 매력은, 필멸의 존재만이 탐할 수 있는 삶과 죽음 이후의 이야기에 대한 갈망에서 오는 건 아닐까요.


《릭 오웬스 가구: 녹은 잠들지 않는다(Rick Owens Furniture: Rust Never Sleeps)》

∙ 2025. 10. 14 - 2026. 2. 14

∙ Ladbroke Hall, Carpenters Workshop Gallery, London


Editor. 성민지

Image. 카펜터스 갤러리


#릭 오웬스 #가구

추천 콘텐츠

전시 소개

키스는 보존되지 않는다

굳어버린 키스들 사이에 살아있는 키스가 있습니다. 올해 3월 #리움미술관(@leeummuseumofart)에서 막을 올린 #티노세갈(Tino Sehgal, b.1976)은 사진이나 영상 등으로 작품 기록을 남기지 않는 작업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대신, 관객이 여러 ‘구성된 상황’을 직접 대면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8개의 서로 다른 상황을 관객이 직접 마주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시 소개

퐁피두 한화를 둘러싼 서로 다른 시선들

6월 4일 드디어 #퐁피두센터한화(@centrepompidouhanwha)의 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같은 공간을 앞에 두고 전혀 다른 시선들이 교차하고 있는데요, 어떤 이에게는 세계적인 미술관의 한국 진출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문화 공간의 탄생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도시의 새로운 풍경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예술과 자본의 관계를 다시 묻게 만드는 장소이기도 하죠.

전시 소개

천재, 장사꾼, 셀럽
여전히 유효한 앤디 워홀

“현대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예술가는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와 같은 설문의 상위권에는 언제나 #앤디워홀(@andywarholgallery)이 호출되곤 합니다.

전시 소개

논란의 중심, 데미안 허스트

죽음은 직면해야 하는가, 소비되어야 하는가. 데이미언 허스트(@damienhirst)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회고전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국립현대미술관(@mmcakorea) 서울관에서 오는 6월 28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약 40년에 걸친 작업 50여 점이 한자리에 모인 이번 전시는 개막 전부터 미술계의 온도를 높였죠. 허스트를 둘러싼 논란은 작품의 충격적인 외양에서 시작해 생명윤리, 저자성, 시장 권력의 문제로 깊게 뻗어 있습니다. 그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작가를 국립기관이 불러들인 것입니다.

전시 소개

《아트바젤 홍콩 2026》 을 사로잡은 한국의 작가들

올해 #아트바젤홍콩(@artbasel)에서 한국 작가들은 섹션도 형식도 다른 방식으로 페어 곳곳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중 에디터의 발걸음이 멈춰 선 다섯 명의 한국 작가를 소개합니다.

전시 소개

차분지만 묵직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새로운 서화실

먹빛과 하얀 종이 질감을 살린 절제된 색조, 낮은 조도 아래 작품 하나하나를 조용히 끌어당기는 집중형 조명. #국립중앙박물관(@nationalmuseumofkorea) 서화실이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이전의 서화실이 작품을 ’보존‘하는 공간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서화실은 서화의 본질인 ’먹과 종이‘를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무대로 탈바꿈했는데요.

전시 소개

Desert X AlUla 2026, 알울라 사막의 랜드아트

수천 년 동안 향신료 교역로와 순례길이 교차하던 알울라.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의 이 고대 오아시스가 다시 한번 문화의 교차로가 됩니다. 오는 2월 28일까지 열리는 Desert X AlUla 2026(@_desertx)은 사막 협곡과 암석 지형을 무대로 11명의 국제 작가가 선보이는 랜드아트 비엔날레입니다.

전시 소개

모딜리아니가 남긴 결정적 실수

그림 속 소년의 어깨 부근, 붉은 물감 자국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나는 지문 하나.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sejongmuseum)에서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가 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