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알베르 까뮈를 숨쉬게 한 여인, 마리아 카자레스
알베르 까뮈의 일생의 연인
: 까뮈를 숨쉬게 한 여인, 마리아 카자레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건 일생일대의 사건인데요. 특히 자신의 열망을 예술작품으로 남기는 예술가에게는 말할 것도 없죠. 예술가라면 그의 작품을 통해 그가 일생 동안 맺어온 관계를 가늠할 수 있을 텐데요. 서로가 만남으로써 풍요로워진 예술세계를 살펴보는 시리즈, 첫 순서는 알베르 까뮈와 마리아 카자레스입니다. 역대 두 번째로 최연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까뮈의 작품세계는 부조리한 세상과 이에 저항하는 불굴의 정신으로 요약되는데요. 일생의 연인이었던 마리아 카자레스는 생을 향한 그의 열정을 일깨우는 불티였습니다.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던 날, 두 사람은 만납니다. 당시 까뮈는 독일 나치의 점령 하에 지하 신문 ‘콩바’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소설 <이방인>을 발표한 상태였고, 마리아는 연극계에서 활동하던 배우였죠. 첫눈에 강하게 이끌린 두 사람은 까뮈의 희곡 <오해>에서 합을 맞춘 뒤 입맞춤을 나누는데요. 이미 결혼했던 까뮈의 아내가 파리로 돌아오면서 둘은 헤어집니다. 이후 두 사람은 4년 뒤 파리의 생-제르맹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데요. 이를 계기로 그들은 1959년까지 무려 12년간 1300여 쪽에 달하는, 86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2017년 갈리마르 출판사는 이를 엮은 <편지(Correspondance)>를 출간하기도 했죠. 두 사람이 실제 함께한 시간은 많지 않지만, 시공간을 넘어선 교류는 멀리 떨어져서도 화음을 내는 현악기의 현처럼 공명합니다.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볼로뉴 숲의 여인들'에서의 마리아 카자레스
그들에게는 연극 외에도 물리적 차원에서든 은유적 의미로든 망명자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프랑코 정권을 피해 스페인 총리였던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망명했습니다. 까뮈는 알제리 출신입니다. 알제리는 프랑스령이지만, 동시에 프랑스 본토와는 떨어져 저만의 특색을 띠는 곳이죠. 고향에 대한 애정은 그의 작품 <결혼, 여름>에 특히 잘 드러납니다. 게다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와 같은 스페인 출신. 마리아를 향한 사랑은 생전 어머니를 향한 까뮈의 깊은 사랑을 연상시키죠.
무엇보다 까뮈는 당시 사상적 차원에서 망명자에 가까웠는데요. 양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급변하던 정치적 지형의 한복판에서 까뮈는 주류 지식인들과 쉼없이 부딪힙니다. 실존주의적 사상을 공유하는 관계였지만, 소련의 공산주의를 두고 언쟁을 벌이다가 멀어진 사르트르와의 일화가 유명하죠. 까뮈의 철학은 당대를 휩쓸었던 나치로 대표되는 파시즘과 공산주의 어느 쪽으로도 포섭되지 않습니다. 나치 독일 하에 사상을 검열당하고, 나아가 이에 대항하는 인물끼리조차 노선을 정하길 강요받았던 시대에 까뮈의 철학은 고독하기 그지없죠. 그런 그에게 마리아와의 교류는 편지 속 문장처럼 변함없이 자신을 지키는 안식처였을 겁니다. “당신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나는 당신의 숨결과 내 영혼을 떠나지 않는 당신의 부재한 시선 속에 살아갑니다”.(1)
알베르 까뮈와 마리아 카자레스
그는 마리아와 서신을 교환한 십여 년 동안 희곡 <정의>와 <전락>, <칼리굴라>를 포함해 역사에 대한 통찰을 엿볼 수 있는 논쟁적 저서 <반항하는 인간>, 미완성 장편소설 <최초의 인간>을 써내려 갑니다. 그의 편지에는 작품을 집필하면서 느끼는 의심과 불안이 교차하죠. 까뮈의 편지에서는 작품에 대한 고뇌 외에도 삶 자체에 대한 고독이 느껴지는데요. 그는 자신을 “파도가 물러가면서 한 척의 낡은 배가 보기 흉한 해안에 버려졌다”고도, “책임과 불행에 짓눌려 몹시 외롭다”(2)고 적습니다. 그때마다 마리아는 그가 지치지 않도록 독려하고, 또 격려하죠.
까뮈의 작품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 마리아의 존재. 마리아의 흔적이 두드러지는 작품으로는 그들의 만남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시점에 발표된 1948년작 희곡 <계엄령>을 꼽을 수 있을 텐데요. 국내에서는 올초 녹색광선 출판사에서 발간돼 화제를 낳기도 했죠. 극 중 디에고와 빅토리아가 주고받는 대사는 앞서 언급한 <편지> 속 사랑 고백을 거울처럼 닮았습니다. 디에고의 “올리브 나무에 달린 나뭇잎의 수만큼이나 당신의 얼굴에 키스했을 텐데!”(3)라는 고백은 “여름을 닮은 당신 피부 전체와 다정함이 깃든 움푹한 관자놀이에 키스하고 또 키스해”(4) 같은, 편지 속 관능적 문장과 포개지죠.
(좌) 1948년 파리 마리니 극장에서 열린 알베르 까뮈 희곡 『포위 상태』 초연 무대에 선 마리아 카사레스와 까뮈
(우)『Correspondance 1944-1959』 북커버, gallimard 출판
<반항하는 인간>에서 까뮈는 부조리를 견디는 인간의 운명을 전면적으로 다룹니다. 까뮈는 니체와 마르크스 등 사상가들의 한계를 통해 역사적 실패를 성찰하되 종교나 이념에 섣불리 의탁하지도, 희생을 부르는 손쉬운 해결책도 거부합니다. 까뮈는 역사의 폭력에 저항하는 행위로 온몸으로 윤리적 긴장감을 감내할 것을 주장하죠. 부당한 상황에 굴종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지속 상태를 강조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온전히 함께 하진 못했던 까뮈와 마리아의 사랑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까뮈가 마리아와 결합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봅니다. 유럽을 휩쓸던 전쟁, 각자 작품활동에 몰두하느라 생긴 시공간의 제약은 물론 이미 가정을 이룬 상황에서도 연정을 이어갔던 까뮈의 상황 자체가 사랑에 대한 부조리에 가깝기도 하니까요.
까뮈에게 마리아의 존재는 파시즘이 팽배한 극단적 세계에서 살아내는 힘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는 마리아를 통해 ‘일상의 호흡을 되찾고, 세상에 대한 혐오를 줄이고, 지극히 그럴 만한 가치를 지닌 것들을 긍정하고 찬미’하게 됩니다. 삶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각을 되찾은 것. “당신이 가끔 놀리곤 했던 내 능력은 단지 외로운 능력이고 부정적인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통해 그 능력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죠.”(5) 까뮈의 사랑은 사랑이 곧 삶을 견디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까뮈에게 마리아는 부조리라는 안개와 폭풍을 뚫고도 저 먼 곳까지 한달음에 날아가게 하는 활시위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그의 생명을 지탱하는, 기어코 끝까지 쏘지 않은 채 견뎌야 하는 단 하나의 활 말이죠.
* 인용
-(1), (2), (4) 알베르 까뮈 <편지>, 갈리마르(2017)
-(3)알베르 까뮈 <계엄령>, 안건우 역, 녹색광선(2025)
-(5)샤를 페펭 <만남이라는 모험>, 한수민 역, 타인의 사유(2022)- 참고: 샤를 페펭 <만남이라는 모험>, 한수민 역, 타인의 사유(2022)
Editor. 성민지
Image. Rue des Archives, IMEC, Magnum, Ku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