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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자본 '아트워싱'에 대하여
요즘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온통 #퐁피두센터한화(@centrepompidouhanwha)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쏟아지는 이미지 속에서 ‘아트워싱(Artwashing)’이라는 단어, 발견하셨나요? 아트워싱이란 예술을 이용해 잘못된 행동이나 이미지를 깨끗이 씻어내는 행위를 뜻합니다.
아트워싱은 현대에 와서 널리 쓰이기 시작한 용어이지만, 예술 후원을 통해 권력과 부의 이미지를 정당화해온 구조는 근대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유럽의 귀족과 상인들 역시 전쟁과 고금리로 벌어들인 돈을 예술 후원에 사용하곤 했으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의 아트워싱을 전부 묵인할 수는 없습니다.
한화의 집단학살 아트워싱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 현장
지금 퐁피두센터 한화 역시 아트워싱 논쟁을 겪고 있는데요.
먼저 퐁피두센터 한화를 반대하는 입장은 한화그룹의 일부 계열사들이 이스라엘 방산기업과 협력해왔다는 점을 문제 삼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기업 자본이 퐁피두센터 한화 운영의 기반이 되면서, 결과적으로 기업 이미지를 문화예술을 통해 세탁하는 아트워싱으로 작용한다고 비판합니다. 여기서 더 행동적인 요구는 퐁피두센터 한화의 개관과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지고요.
한화의 아트워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근거로는 2007년 설립된 한화문화재단이 그전까지는 큰 활동을 보이지 않다가, 최근에 이르러 급진적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갔다는 점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반면, 이에 완전히 공감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존재합니다. 기업의 이윤이 예술에 사용됨으로써 새로운 문화적 경험이 가능해지고, 해외 유명 미술관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옴으로써 국내 관객과 지역 경제가 얻을 수 있는 효과도 있다는 의견입니다.
현재의 세계는 이해관계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사례가 던지는 질문이 까다로운 것도 그래서입니다. 자본의 출처를 끝까지 추적해 ’깨끗한 후원‘만을 가려내는 일이 과연 가능한지, 혹은 그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 누구도 명쾌하게 답하기 어렵죠.
다만 분명한 것은, ’아트워싱‘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더 이상 예술을 그 자체로만 바라보지 않게 되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미술관의 문턱을 넘기 전에 그 공간을 떠받치는 돈의 얼굴을 먼저 떠올리는 시대가 된 것이죠. 그러니 지금 필요한 건 우리가 마주하는 예술 뒤에 어떤 손이 놓여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Image. 홍지영,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문화투데이, Hyperallergic, TheArtNewsp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