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개
볼리유 수도원에서 펼쳐지는 이배 작가 개인전

프랑스 수도원에 번진 한국 작가의 검은 획
: 볼리유 수도원에서 펼쳐지는 이배 작가 개인전
프랑스 남부 한 수도원에 익숙한 그을림이 번져 있습니다.
여기는 900년 가까운 세월을 숨 쉬어온 프랑스의 #볼리유수도원(Abbaye de Beaulieu-en-Rouergue)인데요. 성당 문을 밀고 들어서면 영적인 침묵이 깃든 본당 한복판을 25m 길이의 거대한 천이 솟구치듯 가로지르며 시선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돌벽 사이에 검은 획을 그어놓은 듯한 이 작품은 한국 작가 #이배(@leebae.art)가 숯으로 완성한 설치 작업입니다. 새하얀 천이 공중에서 부드럽게 굽이치지만, 그 표면에는 불을 통과한 나무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죠. 기도와 명상이 머물던 공간에 한 폭의 치열한 숯질이 내려앉은 근사한 장면입니다.

1956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배는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간 뒤 30년 넘게 숯을 탐구해 온 작가입니다.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포대의 숯은 곧 그의 미학을 상징하는 독자적인 언어가 되었는데요. 나무의 형상을 잃고도 고유한 결을 간직한 숯은 불의 흔적과 빛을 동시에 품은 물질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집을 지을 때 부정을 막거나 장을 담글 때 정화를 위해 사용했고, 재가 된 숯은 흙과 섞여 토양을 이롭게 하기도 했죠. 낯선 프랑스에서 다시 마주한 숯은 이배에게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잊고 있던 자신의 뿌리를 되찾게 한 정신적 매개체였습니다.

개인전 《앙 아탕당: 기다리며(En attendant)》가 열리는 볼리유 수도원은 12세기에 세워진 시토회 건축물입니다. 화려한 장식을 멀리하고 절제와 침묵을 중시했던 수도회의 정신이 이배의 작업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는데요. 전시장에는 회화와 조각, 설치 작품이 빛바랜 돌벽 사이로 나긋이 놓여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을 조용히 깨워냅니다. 수백 년을 견딘 석조 공간과 수백 도를 견딘 숯의 작품이 서로의 깊이를 알아보는 듯하죠.

전시 제목인 ’En attendant‘는 프랑스어로 ‘기다리며’라는 뜻입니다. 이 기다림은 작품의 상징을 설명하는 말이라기보다 전시를 감상하는 하나의 방식에 가깝습니다. 관람객은 수도원의 긴 복도와 높은 천장을 천천히 지나며 숯의 거친 단면, 반사되는 표면, 자연광에 따라 달라지는 검은 흔적을 차례로 마주하게 되는데요. 작품을 한눈에 파악하기보다 건축과 빛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오래 지켜보도록 설계된 셈이죠.
900년 동안 고요했던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만든 이배의 숯. 오래된 수도원과 낯선 검은 흔적이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은 채, 각자가 품고 있던 가치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며 한 폭의 황홀한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Editor. 전지은
Image. Lee Bae & Perrotin, Tanguy Beurdeley, Johyun Gallery, Whitelies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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