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술의 미래는 인간의 손끝일까, 알고리즘의 계산일까
감정 없는 코드에 감동하게 된 시대
: 예술의 미래는 인간의 손끝일까, 알고리즘의 계산일까
화가처럼 붓을 들고 행위예술가처럼 퍼포먼스 하는 로봇. 언젠가 예술가라는 직업 역시 기계가 독차지하는 날이 올까요? 지금, 창작의 최전선에서는 인간과 로봇이 함께 예술계의 새로운 서막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로봇이 붓과 조각도를 쥐고 캔버스를 응시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언뜻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이미 세계 곳곳의 무대에서 로봇은 창작자의 자격으로 초대받고 있는데요.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뒤, 이제는 감성과 창조의 영역으로 손을 뻗는 순간이 왔죠. 과연 로봇은 예술가로서의 역량을 온전히 발휘하고 있을까요? 그 질문에 다가가기 위해서, 인간과 기계의 조화로 탄생한 예술적 장면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AI가 그린 벨라미 가족 시리즈 일부
로봇과 예술의 만남은 낯선 조합이 아닌, 이미 현재진행 중인 역사인데요. 프랑스 3인조 예술 크루 오비어스(@obvious_art)는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초상화를 AI에 학습시켜 전례 없는 이미지 하나를 탄생시켰고, 그렇게 완성된 작품 〈에드몽 드 벨라미〉는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6억 원에 낙찰되며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죠. 단순히 기술적 실험이 아닌 ‘창작된 예술품’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예술사의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고전 예술 작품을 데이터화한 정보를 바탕으로 로봇이 스티로폼 작품으로 구현해내는 콰욜라의 대표작 '스컬프처 팩토리'
한편,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시각 예술가 다비데 콰욜라(@quayola)는 로봇 팔에 조각 도구를 쥐여주고 고전 회화와 건축을 재해석한 작품을 제작해 왔는데요. 여기서 로봇은 단순한 복제자가 아니라 인간의 미감과 알고리즘 사이를 유영하며 새로운 조형을 창조하는 능동적 존재로 등장하죠. 더 나아가 미국 뉴미디어 아티스트 골란 레빈(@golanlevin)은 인터랙티브 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소통형 로봇 예술을 선보여 인간-기계-공간의 삼중 대화를 유도합니다.
골란 레빈의 Augmented Hand Series(2014)
이러한 흐름이 단지 ‘신기한 기술 쇼’로만 소비된다면, 예술적 가치의 본질이 퇴색될 수도 있겠습니다. 예술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는 로봇이 만든 작품을 통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되묻고 있을까요? 인간은 감정과 기억, 사회적 문맥이라는 복합적 체계를 활용해 창작합니다. 지금까지의 로봇은 그 복잡성을 학습하고 시뮬레이션할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인간이 정의한 프레임 안에서 작동하는 ‘예측 가능한 창작’에 가까웠을 뿐이지요. 바로 이 지점이, 인간과 기계의 예술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었는데요.
(좌) 골란 레빈의 Molassograph(1998, 2024)
(우) 골란 레빈의 Meshy(1998, 2024)
바야흐로 로봇이 창작의 파트너이자 주체자로서 기능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또한 예술의 잣대가 창작자의 ‘목소리’보다 감상자의 ‘수용’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요.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만들었는가’보다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로봇이 예술계에 새로운 관념의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의 감각이 한층 더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죠. 결국, 인간과 기계의 창작이 만나는 이 접점에서 우리는 예술의 본질을 다시 묻게 됩니다. 예술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반드시 인간의 손끝에서만 시작되어야 하는가?
사람이 입력하고 기계가 수행하는 단반향적 관계가 아닌, 서로 간섭하고 오차를 발생시키며 함께 ‘미지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무한한 창작. 어쩌면 로봇과 예술의 만남은 단순히 기계의 진보가 아니라, 예측을 벗어난 감각과 서사가 공존하는 새로운 미적 차원의 개막일지도 모릅니다.
Editor. 전지은
Image. @obvious_art @quay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