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콘크리트 디스토피아에 자라난 식물



콘크리트 디스토피아에 자라난 식물

: 인간이 식물에게 공간을 반납하는 방법



식물의 입장에서 콘크리트 도시는, 수억 그루의 나무를 베어낸 자리 위에 세워진 ’회색 묘비‘와 다름없습니다. 인간의 손으로 일궈낸 이 회색의 확장 속에서, 우리 역시 쉴 곳을 잃어가고 있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잃은 그 쉴 곳은, 애초에 우리 것이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줄곧 식물의 자리를 약탈해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기, 빼앗은 공간을 자연에 반납한 세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① 1000Trees, 상하이


상하이 푸퉈구의 복합 개발 단지 #1000Trees. 2021년 완공된 이 건물을 설계한 #헤더윅스튜디오(@officialheatherwickstudio)는 독특한 전략을 세웠습니다. 건물을 지탱하는 약 1,000개의 기둥을 내부에 숨기지 않고, 외벽으로 드러낸 뒤 각 기둥 끝마다 거대한 화분을 얹은 것이죠.




상하이 푸퉈구 쑤저우 강변에 위치한 1000Trees



이 화분에는 상록수, 덩굴식물, 꽃나무가 빼곡히 심겨 계절마다 색이 변하는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산맥을 옮겨놓은 듯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녹지를 건물에 장식처럼 붙인 게 아니라, 건물의 구조 자체를 식물과 공유했다는 겁니다. 기둥을 식물의 자리로 내어줌으로써, 건물이 차지한 공간만큼 자연도 함께 숨 쉴 수 있도록 설계한 ’구조적 공생‘이죠.



② 하이라인, 뉴욕


뉴욕의 #하이라인(@highlinenyc)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간을 되찾았습니다. 1930년대 건설된 이 고가 철도는 1980년 운행을 중단한 후 20년간 방치되었습니다. 그 사이 콘크리트 틈새로 야생 식물이 스스로 자리를 되찾기 시작했죠. 민들레, 엉겅퀴, 자작나무까지. 인간이 버린 구조물 위에서 자생한 식물의 풍경은 황량하면서도 경이로웠습니다.




(좌) 철도가 운영되지않자 야생화가 피기 시작한 하이라인
(우) 도시 생태계를 기념하는 'Nature in the City' 행사 진행 중인 하이라인



1999년, 이 풍경에 매료된 지역 주민 조슈아 데이비드와 로버트 해먼드는 철거 계획에 반대하며 비영리 단체 ’하이라인 친구들(Friends of the High Line)‘을 설립했습니다. 10년의 노력 끝에 2009년 하이라인은 공원으로 재탄생했고, 현재 2.3km 길이의 공중 정원에는 5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때로는 한발 물러서서 자연에게 시간과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만으로도, 도시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증거였죠.



③ 매력·동행가든, 서울


우리나라에도 공간 반납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2026년까지 추진하는 〈매력가든·동행가든〉은 도심 곳곳 1,007개의 작은 정원을 조성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대규모 랜드마크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의미 있습니다.


출퇴근길 가로수 아래, 아파트 자투리땅, 건물 옥상처럼 매일 스쳐 지나치던 공간들이 식물의 자리로 바뀝니다. 기존 공원에는 수국정원, 야생화정원 같은 테마 공간을 더하고요. 대형 공원 하나보다, 일상 속에서 매일 마주치는 작은 녹지 여럿이 시민들에게는 더 가까운 안식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서울 시민 1인당 생활권 공원 면적은 약 4-6m², 거실 한 칸 크기에 불과합니다. WHO 권장 기준인 9m²에도 못 미치는 수치죠. 이런 서울에서 1,007개의 작은 화단은 자연에 건네는 최소한의 사과이자, 우리를 위한 가장 가까운 쉼터가 됩니다.


공간의 반납은 아름다운 풍경을 위한 선택이 아닙니다. 기후위기 시대, 도시가 살아남기 위한 필연이죠. 녹지는 열섬현상을 완화하고 미세먼지를 줄이며 시민의 정신 건강을 지켜줍니다.


1000 Trees의 구조적 공존, 하이라인의 자생적 회복, 서울의 일상 속 반납. 이 시도들이 모여 도시는 조금씩 생명력을 되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들의 자리였던 곳으로 조금씩 돌려주는 것. 그때 비로소 도시는 회색 묘비가 아닌, 인간과 식물이 함께 숨 쉬는 생명의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Editor. 김세연

Image. High Line, Arch Daily, 뉴시스, @seoul_official


#건축 #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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