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름 없는 사물들의 무심한 아름다움



이름 없는 사물들의 무심한 아름다움

: 공허한 소비의 시대, 사물의 본질을 대면하는 방법



바야흐로 브랜딩 과잉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물건의 기능을 따지기보다 이름표가 주는 환상에 더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멀쩡한 물건을 두고도 새것을 탐하는 건, 브랜드의 이미지가 곧 나의 가치가 된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인 소유가 즐거움이 될 순 있지만, 이미지만 좇는 소비는 언제나 공허한 뒷맛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일본의 근대 공예운동가이자 수집가인 #야나기무네요시(1889~1961)는 제작자의 서명조차 없는 ‘평범한 물건들’에 깃든 아름다움을 발견했습니다. 물건의 진정한 미학은 ‘쓰임’ 속에서 완성된다고 설파했죠. 야나기가 이 ‘평범한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된 건 1914년, 친구에게 조선의 백자를 선물 받으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1916년부터 1940년까지 약 21번이나 조선을 방문하며, 경성과 경주 등지에서 투박한 살림살이를 수집했습니다. 한쪽이 찌그러진 백자, 특별한 구석이 없는 소반. 야나기는 여기에 ‘민예’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민예란 ‘민중적 공예’란 뜻입니다. 이름 없는 아무개가 만든 것이지만 그 쓰임이 명확하며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공예품이죠. 야나기가 민예를 정의한 데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① 믿음직한 물건일 것


“좋은 기물에는 언제나 질서의 아름다움이 투영된다. (…) 덕을 지키는 세계에서 조악한 품질이나 거친 작업이 허용될 리 있겠는가.”

야나기는 자신의 책 『공예의 길』에서 ‘작품의 아름다움은 곧 신용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했습니다. 재료의 선택이나 작업 공정이 정직해야만 ‘민예’라고 덧붙였죠. 그는 아름다움과 올바름은 떨어질 수 없는 가치라고 여겼습니다.





② ‘타력’에 의해 만들어질 것


‘타력’은 ‘자력’과 반대되는 불교 용어로, 만드는 이의 의지나 욕심이 앞서지 않음을 뜻합니다. 나무와 흙, 옻 등 자연에서 온 재료,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기술과 도구, 그리고 협동하는 공동체의 질서가 바로 ‘타력’입니다. 즉, 민예란 이 타력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 물건을 만드는 나’를 지워내는 과정에서 탄생합니다.





③ ‘염가’, 값이 저렴할 것


“여기서 심미적 이상은 다시 경제학적 이념과 결합한다. (…) 화폐 가치로부터 가능한 한 이탈하는 것이야말로 미의 보증임을 설파하고자 한다.” 야나기는 ‘민주적 미학’을 추구했습니다. 소수만 누리는 사치품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물건이야말로 진정한 민예라고 말했죠. ‘화폐 가치로부터의 이탈’은 물건의 가치를 ‘얼마나 비싼가’에 두는 게 아니라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에 두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떤 브랜드의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지만, 야나기는 오히려 ’과잉된 자아‘를 지운 물건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정직한 공정으로 만들어지고, 타력에 몸을 맡기며,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평범함을 갖춘 사물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죠.


브랜드가 설계한 환상을 걷어내고 사물의 본질을 대면하는 연습, 어쩌면 그것이 공허한 소비의 시대를 건너가는 방법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가진 수많은 물건 중, 브랜드를 가려도 여전히 민예적으로 아름다운 물건은 무엇인가요?


Editor. 김세연

Image. 국립중앙박물관, Colbase, 아오조라 분코(青空文庫)


#민예 #야나기무네요시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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