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잘린 눈, 사랑의 징표
“내 눈을 함께 보냅니다.” 1785년 영국의 웨일즈 왕자 조지 4세는 금지된 사랑을 했습니다. 당시 결혼이 금지되어 있었던 미망인을 사랑했던 왕자는 사랑하는 이를 향해서 편지와 함께 소포를 보냈죠.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내 얼굴을 아직 잊지 않았다면,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동봉된 소포에는 왕자의 오른 한쪽 눈이 작은 상아 조각 위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비밀스러운 사랑을 하고 있었던 그는 얼굴 전체 초상화 대신, 은밀하게 시선을 교환했던 자신의 오른 눈이 그려진 초상을 그녀에게 보냅니다.
서로 한쪽 눈 초상을 교환한 이후, 결국 그녀와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왕자는 죽기 전에 그의 심장에 가장 가까운 곳에 그녀의 초상을 함께 묻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전해지죠.
이들의 이야기 때문인지, 이 한쪽 눈 초상은 1785년경부터 영국 전역에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2cm 남짓한 상아 조각 위에 수채화로 그려진 이 초상은 반지, 브로치, 펜던트 같이 몸 가까이에 소지할 수 있는 액세서리부터, 심지어 이쑤시개 케이스, 문구함 같은 작은 케이스 위까지 올려졌습니다.
∙ 왜 한쪽 눈일까
18세기 말, 약 반세기 동안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 독특한 유물은, 러버스 아이(lover’s eye)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런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V&A),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에 100여 점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16세기부터 유럽 궁중에서 성행한 초상 미니어처(portrait miniature)의 하나의 짧은 예외적인 현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한쪽 눈 초상화는 그럼에도 한 가지 큰 의문을 남깁니다. 왜 전체가 아닌 단 하나의 눈만을 그렸을까?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하나의 눈은 오히려 감시와 권위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탈리아 성당 천장에 그려진 외눈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신의 눈’으로, 프랑스의 경찰 벨트 장식에서 한쪽 눈은 감시의 상징으로 드러납니다.
∙ 나를 가지세요
그렇다면 18세기 말 영국 귀족들은 왜 한쪽 눈만 그려 넣었을까요. 당대 화가들이 기술을 과시하려 이색적인 형식을 시도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진 시대 이전 사람들은 ‘자신의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의 일부를 주고 싶어했다’고 주장한 미술사학자의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얼굴 전체를 작은 상아 위에 그린 초상 미니어처는 주로 귀족의 구혼, 약혼, 결혼 협상에 쓰였습니다. 옷 속에 숨길 수 있는 크기로 제작된 이 얼굴 그림은, 협상에서 당사자를 대신하는 이미지로 기능했습니다. 협상이 아니라 사랑을 원했던 이들에게, 얼굴이라는 공식적인 이미지가 아닌 눈이라는 익명의 암호가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눈물을 흉내 낸 다이아몬드가 장식되어 있기도, 뒷면에 머리카락이 잘려 붙어 있기도, 또 나무와 함께 그려져 있기도 한 이 한쪽 눈 초상에는 분명 비밀스러운 사적인 상징들이 눈과 함께 달라붙어 있습니다.
떼어지고, 잘리고, 사물과 놓인 이 눈은 신체를 파편화해 낯설게 바라보게 만들었던 193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의 낯섦과 불안을 연상시킵니다. 그럼에도, ‘내 얼굴을 보여줄게요’가 아닌 ‘내 한쪽 눈을 가져주세요’라는 고백은 분명히 은밀하고 더 관능적입니다.
Editor. 이마지
Image. Victoria and Albert Museum, Philadelphia Museum of Art, Uffizi, The Museum of Modern Ar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