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프라다의 디자인적 감각을 꺼내준 남자



밀라노의 앙숙이 만든 세계적 브랜드

: 프라다의 디자인적 감각을 꺼내준 남자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와 후미코 엔치의 저서를 읽는 ‘미우미우 문학클럽’으로 화제를 모으는 동시에 베르사체를 2조 원에 인수하며 이탈리아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한 본진을 다지는 패션 그룹, 바로 #프라다(@prada) 그룹인데요. 브랜딩과 사업 확장, 양쪽으로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는 프라다 그룹 뒤에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놀라운 비즈니스 감각으로 브랜드를 이끌어온 두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가 만남으로써 풍요로워진 예술세계를 살펴보는 시리즈, 두 번째 순서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그의 남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입니다.




미우치아 프라다, 파트리치오 베르텔리



프라다의 전 CEO이자 프라다의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미우치아 프라다(76)는 본래 밀라노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는데요. 패션산업에는 조금도 관심 없던 그녀가 파산 직전의 가업을 물려받게 됩니다. 가업을 물려받고 6년 뒤, 미우치아는 소수의 상류층을 대상으로 가죽 트렁크를 팔던 프라다에 ‘생활의 실용성과 멋을 모두 도모하는 진취적이고 활동적인 여성’이라는 새로운 타겟층을 불어넣습니다. 1984년 출시돼 지금도 다양한 버전으로 사랑받는 나일론 백 ‘프라다 벨라(Prada Vela)’의 흥행이 그 증명이었죠.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가업을 물려받기 한 해 전인 1977년 6월, 미우치아는 밀라노의 국제 가죽 제품 박람회에서 평생의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가 될 파트리치오를 만납니다. 당시 미우치아는 29살, 파트리치오는 31살로, 파트리지오는 이른 나이에 사업을 시작, 벨트와 가방을 만드는 소규모 가죽업체  대표로 부스에 참여했는데요. 미우치아는 파트리지오의 제품이 자신네 것과 닮았다는 소문을 듣고 불편한 심기로 그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파트리지오는 오히려 프라다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개진하면서 대화에 물꼬를 텄다고 하는데요. 적대적인 상대에게 ‘맞불’로 응수하는 대신, 전향적 방향을 모색하는 대화로 상대를 포섭하는 파트리지오의 능력이 돋보이는 에피소드죠.




프라다의 시그니처 나일론 소재로 만들어진 클래식한 프라다 벨라(Vela) 라인과 프라다의 자매 격 브랜드 미우미우의 백



이듬해인 1978년, 미우치아는 공식적으로 가업을 물려받습니다. 파트리지오는 프라다의 가죽 공급업체로 계약을 맺죠. 이후 프라다는 1983년 신발 라인을, 1988년엔 첫 여성복 라인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그 해, 10년에 걸쳐 정서적 유대를 바탕으로 사업을 논의하며 씨실과 날실 같은 관계를 맺어온 두 사람은 결혼합니다. 프라다의 첫 여성복을 선보인 해 이뤄진 결혼은 두 사람의 돈독한 신뢰와 긴밀한 유대감을 짐작케 하는데요. 이런 흐름 뒤에는 미우치아가 디자인적 감각을 살리도록 독려한 파트리지오가 있었습니다. 결혼 후 미우치아의 행보는 한층 과감해지는데요. 5년 뒤, 프라다의 자매 격 브랜드 #미우미우(@miumiu)가 탄생한 것. 그녀는 파트리지오에 대해 ‘나보다 훨씬 도발적인 사람’이라고 언급합니다.(1) 만약 미우치아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파트리지오가 없었다면, 우린 이 사랑스러운 브랜드를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미우치아가 자신의 미학을 세상에 관철시키는 동안 파트리지오는 사업 입지를 넓혀갑니다. 1990년 펜디, 아제딘 알라이아 등 명품 브랜드를 인수하던 파트리지오는 2000년부터 프라다의 상장을 추진합니다. 그리고 2011년 6월, 홍콩 증권시장에 기업공개(IPO)를 하죠. 주당 39.50 HKD(홍콩달러)로 주식을 발행한 프라다는 상장을 통해 21억 4000만 달러를 조달합니다. 목표치였던 30억 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성장하는 아시아 시장 진출에 힘을 보탰죠. 한편 90년대 초 일련의 전시로 시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는 1995년 건축과 미술, 철학, 과학, 영화와 공연예술을 망라한 전시관 폰다지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로 이어집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사회와 문화를 탐구하고, 지적 교류를 나누는 이곳은 밀라노와 베이스, 도쿄, 상하이 등 전 세계에서 다양한 전시와 공연으로 방문객의 발길을 이끌고 있죠.




2015년 개관한 복합 문화 공간 '폰다지오네 프라다'



프라다는 건축가 렘 콜하스와 전시관을 건립하고, 누벨바그로 영화사에 획을 그은 장 뤽 고다르와 영화제를 열지만, 이를 브랜드에 패션적 요소로 활용하지 않습니다. 파트리지오는 폰다지오네 프라다가 벌이는 예술 프로젝트에 대해 “(폰다지오네 프라다의 존재 이유는) 의미 있는 연구를 발표하는 일”이라며 더 많은 소비자를 유입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밝혔는데요. “(재단에서 하는 일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일이 아니”라며 “합의를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평범함이며, 인간의 가장 극악한 약점 중 하나”라고 단언합니다. 이는 미우치아가 “내게 흥미로운 것은 확신이 아닌 의심과 충돌, 갈등(2)”이라고 한 발언과 정확히 맞닿습니다. 자본주의의 최전선 산업인 패션 브랜드를 이끄는 수장의 발언으로는 매우 전복적이죠. 패션이 흔히 ‘스타일’이라는 말로 대체되는 고정체라면, 예술은 자기복제와 가장 거리가 먼 유동체일 텐데요. 패션과 예술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꾀한다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예술은 한층 혹독한 자기갱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더 멀리 나아갑니다. 그런 점에서 미우치아와 파트리지오가 어떤 정신으로 브랜드를 이끌어 왔는지 상상할 수 있죠.


프라다 그룹의 기업 소개서는 “세상을 향한 세심한 호기심과 관찰은 프라다 그룹의 창의성과 현대성의 원천(3)”으로 시작합니다. 나아가 “변화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치 않는 것은 변화뿐(3)”이라며 물처럼 유동하는 세계의 흐름에 유연하게 적응할 것을 강조하죠. 이제 프라다 그룹은 미우미우의 무서운 성장세와 동국의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를 인수에 힘입어 프랑스 명품 그룹 LVMH를 대적할 이탈리아 명품 그룹으로  꼽힙니다. 신경퇴행성 질환의 연구를 지원하고,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가와 패션 캠페인을 벌이는 등 낯설고 생경한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프라다 그룹의 행보는 일종의 예술에 가까워 보이는데요. 오랜 격언 중에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죠. 프라다의 여정에는 창의성과 비즈니스 영역에서 상대의 역량을 믿고, 서로의 욕망을 지지하며 세상으로 뛰어든 한 쌍이 있었습니다.


참고

(1) Patrizio Bertelli, BOF

(2) Selena Mattei Miuccia Prada: the collection of Fondazione Prada, Art Majeur, June 13th, 2023

(3) 프라다 그룹 기업 소개서


Editor. 성민지

Image. 미우치아 프라다, 프라다, 폰다지오네 프라다 인스타그램


#프라다 #미우미우 #폰다지오네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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