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일본 9명 vs 한국 0명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일본 9명 vs 한국 0명
: 건축으로 사유하는 일본, 아파트로 장사하는 한국
안도 다다오(1995 수상), 이토 도요(2013 수상), 반 시게루(2014 수상), 야마모토 리켄(2024 수상), 세지마 가즈요 & 니시자와 류에(2010 수상), 단게 겐조(1987 수상)
2024년, #야마모토리켄(@riken_yamamoto)이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면서 일본은 총 9명의 수상자로 미국을 제치고 최다 배출국이 되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맞이한 올해, 중국의 #류자쿤(@jiakunarchitects)이 2025년 수상자로 선정되며 한국 건축계는 거듭 씁쓸한 마음을 감춰야 했죠.
물방울이 돌을 뚫을 수 있는 건, 지루할 만큼 미약하다해도 그 꾸준함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건축이 세계 무대에서 늘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한 해를 대표하는 단 한 명의 건축가를 아홉 명이나 배출한 놀라운 성취 역시 일본 사회 전체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건축문화의 총체적 결실입니다.
(좌) 지중미술관(일본 나오시마, 건축 안도 다다오)
(가운데) 미토 예술관(일본 이바라키현, 건축 이소자키 아라타)
(우) 물의 교회(일본 홋카이도, 건축 안도 다다오)
일본 현대건축의 저력은 기술이나 미학을 넘어서는 구조적 토대에 있습니다. 근대화의 긴박함 속에서도 건축을 예술과 기술, 철학이 어우러진 종합적 학문으로 바라보았죠. 건축가에 대한 사회적 신뢰, 주택 중심 생활, 설계와 시공의 균형적인 발전, 지역 특색 존중, 활발한 커뮤니티와 도제 등을 기반으로 한 성장은 도시 곳곳을 실험의 장으로 만들며 세계 어디서도 보기 드문 건축적 다양성과 깊이를 만들어냈습니다. 일본 건축가들은 작은 주택부터 공공건축까지 폭넓은 영역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펼칠 수 있었고, 사회는 그 크고 무거운 창작을 문화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좌) 사야마이케 박물관(오사카, 건축 안도 다다오)
(가운데) 커튼월 하우스(도쿄, 건축 반 시게루)
(우) 협소한 공간에서도 섬세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타케시 호사카의 Love2 House(도쿄)
반면 한국의 상황은 매우 상반됩니다. 도시화는 급격했지만, 건축적 내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아파트를 선호하게 된 획일적인 문화가 문제의 핵심인데요.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빠른 주택 공급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파트는 가장 효율적인 해법이었고, 어느샌가 집은 ‘삶을 담는 공간’이 아니라 ‘숙박이 가능한 상품’으로 전락해 버렸죠. 건축의 개성과 실험은 사라지고, 평면과 외관이 비슷한 콘크리트 탑이 도시를 가득가득 채우기 시작합니다.
전공자들의 입장은 어떨까요.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건축은 미학적 사고와 창의적 설계를 경험하며 설렘을 부풀리는 시간입니다. 평면도로 이상을 표현하고, 철학이 담긴 공간을 제안하는 일에 매료된 수많은 학생이 있었죠. 그러나 이내 척박한 현실을 체감합니다. 졸업과 동시에 마주하는 건설 산업의 구조는 설계보다는 시공, 창작보다는 분양, 공익보다는 사익을 강요하는데요. 그렇게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자신이 꿈꾸던 역할이 아닌, 수익을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는 처지에 주저앉게 됩니다.
(좌) 골판지 대성당(뉴질랜드, 건축 반 시게루)
(가운데) 비가 많이 오는 지역 기후 특색을 반영하여 나카니시 쇼타와 오노 히로후미가 설계한 일본의 주택(가나자와)
(우) 오모테산도 브랜치(도쿄, 건축 후지와라 소)
설계공모는 저가 낙찰의 구조에 묶이고, 건축주 역시 미학적 가치보다는 면적과 예산을 우선시하고, 가뭄에 비 오듯 떨어지는 괄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하나같이 콧대 높은 해외 스타 건축가(국내 프로젝트는 상당수 건성으로 설계)를 마케팅 수단으로 값비싸게 모셔 오면서, 우리의 건축 생태계가 조용히 질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건축가 역시 이러한 세태를 직시하고 있는데요. 그 때문에 이들은 대중의 보수적 수요 속에서도 독립적인 실험을 멈추지 않습니다. 메마른 조건 안에서 새로운 해법을 끊임없이 발굴하기 분투하고 있죠.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사회 전체의 기대와 연결되지 않는 이상, 그 노력은 여전히 제한된 사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트로 만들어지는 한국의 재건축 재개발 현장
최근 지자체 주도의 건축문화 진흥 정책, 소규모 대지에서의 실험적 주택, 건축가 중심의 리노베이션 사례들이 주목받으며 점차 변화의 흐름이 엿보이기도 하는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요의 전환입니다. 전부 아파트를 좋은 집의 표상으로 삼으면서 정작 해외 여러 도시의 풍경과 건축 사례를 선망하는 이 아이러니함의 균열을 만들어야 하죠.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시민들의 감수성이 높아지고, 그 감각이 시장과 제도를 움직일 때, 비로소 국내 건축이 고유한 문화로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프리츠커’라는 감투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우리 도시의 감도가 높아짐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일본은 오랜 시간 건축을 문화로 존중하며 삶의 태도와 사회적 철학을 공간에 녹여냈습니다. 그 꾸준한 정신이 오늘날 세계 건축계를 이끄는 위상을 가능케 했는데요. 한국 역시 이제는 속도와 효율의 시대를 지나, 도시가 사람을 치유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곧 우리를 정의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니까요.
Editor. 전지은
Image. Wallpaper, Pritzker Prize, Arch Da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