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이 곧 작품, 주목해야 할 국내 뮤지엄 건축 4

트렌드


나들이하기 딱 좋은 계절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이라면, 뮤지엄은 어떠신가요? 눈을 사로잡는 작품만큼이나 멋진 건축물로 주목받는 뮤지엄을 소개합니다. 무더위가 찾아들기 전, 우리 가까이의 예술을 어서 누려보세요.

 

건축가 이타미 준을 만나는 시간, 유동룡미술관(2022)


유동룡미술관은 이타미 준(Itami Jun)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건축가 유동룡의 미술관입니다. 건축가 유이화(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던 그를 위해 설계하고 작년 연말에 개관한 따끈따끈한 장소입니다. 무려 제주에 있고요.


유동룡미술관 입구 ⓒ김용관


이타미 준은 재일교포 건축가입니다. 그는 일본에도, 한국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평생 경계인의 삶을 살았는데요. 해외에서 그의 건축이 품은 진가를 먼저 알아보면서 여러 차례 저명한 건축상을 수상하였고, 고국에는 뒤늦게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그는 건축물이 자리할 장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콘크리트, 목재 등 건축재료 본연의 색감과 질감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가 하면, 자연과 조화를 이룬 공간으로 지역성을 드러냅니다. 포도호텔(2001), 수풍석 미술관(2006), 방주교회(2009) 등 제주에 세워진 그의 건축물에서 이러한 스타일이 특히 잘 나타납니다.

 

유동룡미술관 외관 ⓒ김용관


유이화는 자신의 이름을 딴 건축상과 문화재단, 기념관을 만들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회색빛 노출콘크리트와 제주의 돌, 목재를 재료로 사용해 유동룡을 닮은 공간을 완성했죠. 대지에 자연스럽게 안착한 배치에는 땅을 향한 존중이 담겨 있고, 뮤지엄보다는 건축가의 집에 온 듯한 공간감과 동선으로 관람객에게 환대를 가득 전합니다.


유동룡미술관 1층 ⓒ김용관


유동룡미술관 상설 전시관 ⓒ김용관

 

미술관은 방문 예약 시스템으로 운영해 관람객이 천천히 음미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디오 도슨트는 물론 장소에 대한 설명이 담긴 뮤지엄키트를 제공해 관람객에게 보다 친절하게 다가갑니다. 현재 미술관에서는 건축가 이타미 준의 작품을 아카이빙한 전시,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이 열리고 있습니다. 제주를 여행하게 된다면, 뮤지엄과 건축가의 여러 작품을 둘러보며 그의 자취를 살펴보아도 좋겠습니다.

@itamijun_museum

 


도산대로에 들어선 거대한 삼각형 오브제, 송은(2021)


청담동 도산대로를 걷다 보면 길을 막아선 듯 거대한 콘크리트 벽면이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이 있습니다. 직사각형 파사드의 옆면을 돌아보면 날카로운 삼각형의 반전 모습이 펼쳐지는데요. 건물이라기보다 마치 하나의 조각처럼 보이는 이곳은 스위스의 건축사무소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한 송은문화재단의 신사옥입니다.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세계 곳곳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작업하는 글로벌 건축사무소입니다.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등 수많은 건축물로 이름을 알려왔는데요. 송은은 그들이 한국에서 선보인 첫 번째 작품입니다.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건축물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벽면에 새겨진 나무의 결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건축가는 ‘숨어있는 소나무’를 뜻하는 ‘송은松隱’에서 영감을 받아 이 같은 텍스처를 구현했다고 합니다. 송판 거푸집으로 틀을 짜고 콘크리트를 부어 질감을 남긴 것이죠. 파사드에 무늬와 질감이 더해지며 한눈에 담기지 않던 건축물은 휴먼 스케일로 전환됩니다.


1층 전시 전경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2층 전시 전경 ⓒSONGEUN Art and Cultural Foundation and the Artist. All rights reserved.


‘서울에서 가장 상업적인 지역에 위치한 비영리 전시 공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로웠다’는 건축가의 말대로 사옥과 상업 시설로 가득한 청담동 거리에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 동시대 미술을 경험할 수 있는 건축물이 들어섰다는 것만으로 꽤나 반가운 소식입니다. 청담동에서 이 거대한 파사드를 발견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입장해 멋진 공간감을 경험해 보세요.

@songeun_official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 된 뮤지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2009)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출판사 열린책들의 예술 서적 브랜드인 미메시스가 운영하는 미술관입니다. 뮤지엄이 위치한 파주출판단지는 건축가 승효상의 총괄 계획 아래 국내외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한 출판사 사옥과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는데요. 각자의 정체성이 뚜렷하면서도 아름다운 건물을 둘러보고 있자면, 마치 뮤지엄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중에서도 건축가 알바루 시자(Alvaro Siza)가 설계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지만, 그보다 더 작품처럼 느껴지는 공간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photographed by Fernando Guerra ⓒOpenbooks.

 

포르투갈 출신의 건축가, 알바루 시자는 자연과 융합하는 형태, 빛을 체험하는 공간,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지는 조형성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그러한 건축가의 언어를 바탕으로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 미술관에서 벗어난, 이곳만의 정체성을 만들었는데요. 다양한 곡면을 빚은 듯한 형상, 조명 대신 자연광을 끌어들여 은은하고 차분한 분위기, 그 속에 빛이 자유롭게 산란하며 만들어 낸 잔상, 순백으로 가득한 실내 공간이 바로 그것입니다.


photographed by Fernando Guerra ⓒOpenbooks.


알바루 시자가 미술관을 순백의 공간으로 지은 것에 대해 관장 홍지웅은 ‘자신의 디자인을 과시하기보다는 예술가와 전시될 작품을 배려한 결과’라 말합니다. 오직 전시실에 놓일 작품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어느 것도 시야에 닿지 않도록 디자인한 것이죠.


photographed by Fernando Guerra ⓒOpenbooks.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미메시스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이고 개성적인 예술세계를 꾸준히 소개합니다. 현재 그 여섯 번째 기획전, 「MIMESIS AP6: SIGN」이 열리고 있는데요. 예술가에 대한 존중, 작품에 대한 배려가 모여 완성된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그 가치를 오롯이 느껴 보는 것은 어떨까요.

@mimesis_art_museum

 


유리와 금속 루버가 만드는 도시의 풍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2017)


서울 신용산역 앞에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00m에 이르는 거대한 직육면체 형상의 건축물이 있습니다. 흔히 고층빌딩 하면 떠오르는 높은 비율이 아닌 정육면체에 가까운 비례감이 낯설게 다가오는데요.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입니다. 그리고 이 사옥의 지하에 아모레퍼시픽 미술관(APMA, Amorepacific Museum of Art)이 자리해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입니다. 건축물이 놓일 지역, 그리고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관계 맺는 작품을 설계해 왔고, 올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는 아모레퍼시픽 사옥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는 사옥의 1층을 공공에 열린 문화 공간으로 제안하였고, 외피를 투명한 유리와 알루미늄 루버의 두 가지 켜로 설계해 도시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거대한 직육면체 건물의 삼면을 뻥 뚫어 정원을 조성했는데요. 비워진 외부 공간은 건물 내의 이용자뿐 아니라 거리에서 건축물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시야를 열어주며 도시의 정원처럼 역할 합니다.

 

 <Andreas Gursky> 전시 전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사진 studio_kdkkdk


<조선, 병풍의 나라 2> 전시 전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아모레퍼시픽의 창립자인 서성환이 수집한 작품을 기반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소장품을 전시하지만, 늘 같은 모습의 상설 전시가 아닌 기획전을 통해 새로운 조합으로 보여줍니다. 지난봄에 열렸던 고미술 기획전 <조선, 병풍의 나라>가 대표적인 사례죠. 미술관에서는 전시 외에도 국내 신진작가를 발굴, 지원하는 현대미술 프로젝트인 ‘에이피 맵(amorepacific museum of art project)’을 운영하는 등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연구, 출판 활동을 펼칩니다. 5월 25일부터는 현대미술 소장품 특별전 《APMA, CHAPTER FOUR - FROM THE APMA COLLECTION》이 개최됩니다. 도심 속 건축물이 어우러지는 풍경과 다채로운 소장품을 한 번에 만나보세요.

@amorepacificmuseum

정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