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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사 케르미쉬가 곡선으로 말하는 것

여성성을 장식으로 말하는 방식
: 아니사 케르미쉬가 곡선으로 말하는 것
직선이 기능과 질서를 상징한다면 곡선은 감각과 유연성을 드러냅니다. 그중에서도 인체의 곡선은 설명 없이도 그 자체로 완성된 요소로, 인체를 닮은 오브제는 단순한 장식 그 이상의 긴장을 품기 마련이죠. #아니사케르미쉬(@anissakermiche)의 장식은 몸을 소재로 삼되 시선을 유머러스하게 비틀어 사람들 앞에 내놓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아니사 케르미쉬는 파리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다 스물다섯에 돌연 진로를 바꿔 런던으로 향합니다. 이미 한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던 그녀의 25살은 누군가에게는 늦은 선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녀에게는 가장 적절한 시기였죠.

아니사는 자신의 작업에 과거와 꿈, 그리고 삶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심을 녹여냈다고 설명하는데요. 엔지니어 시절의 답답함은 사치와 화려함 그리고 즐거움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고, 자연스레 여성적인 선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진주의 둥근 형태, 신체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곡선은 모두 그 중심을 향해 있죠.

케르미쉬에게 곡선은 예술적 요소에서 나아가 태도로서 작동합니다. 억눌렸던 시간에 대한 반작용이자 여성성과 장식에 대한 욕망을 당당히 드러내겠다는 선언이죠. 아니사의 작업물은 커밍아웃 같다는 그녀 친구들의 말처럼 그녀의 오브제는 숨겨야 할 대상이었던 신체의 일부를 선반 위나 테이블 위처럼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꺼내놓습니다.
가슴을 닮은 ‘브레스트 프랜드 꽃병(breast friend vase)‘, 난자를 뜻하는 ovum을 이름에 활용한 ‘오부플레이트(ovuplate)‘, 불어로 엉덩이를 귀엽게 표현할 때 사용하는 popotin을 합쳐 지은 ‘포포탱 팟(popotin pot)‘ 등 신체와 성을 연상시키는 언어에 위트를 더한 말장난으로 숨겨져 왔던 몸에 대한 인식을 가볍게 표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아니사 케르미쉬의 작업은 여성의 신체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구구절절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서사를 담고 있음에도 오브제는 특정한 이념으로 고착되지 않고 인체를 닮은 이 장식이 공간 속에서 어떤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가를 보여줄 뿐이죠. 여성의 몸을 닮은 화병이 거실 한복판에 놓일 때 그 의미는 관찰자의 시선에 따라 유희가 되기도 하고 대담한 예술이 되기도 합니다. 인체를 닮은 이 당당한 장식들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 왔던 감각들을 다시금 직면하게 합니다.
Editor. 이현정
Image. @anissakermiche
#AnissaKermiche #오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