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이 곧 전시 작품, 주목해야 할 해외 뮤지엄 건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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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국내 시리즈에 이어 이번에는 해외의 뮤지엄 건축물을 소개합니다. 아름답게 지어진 건축물은 그 자체가 도시 속 하나의 예술 작품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건축가가 자신만의 언어로 빚어 내어 세계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세 곳의 뮤지엄을 만나보세요.


사막에 세운 미술관 군도, 루브르 아부다비(2017)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위치한 루브르 아부다비(The Louvre Abu Dhabi)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분관입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2019년 기준 총 61만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관에 공개된 것만 3만 5천 점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전 세계 대표 뮤지엄입니다. 그들은 작품을 더 많은 자리에서 선보이고자 2003년부터 분관 구축 계획을 꾸려왔고, 기나긴 준비를 거쳐 2012년에는 프랑스 국내에 루브르 랑스(The Louvre-Lense)를, 2017년에는 루브르 아부다비를 완성합니다.


설계를 맡은 프랑스의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은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기도 한 세계적 건축가입니다. 한국에서는 리움 미술관(2004)의 설계자로 잘 알려져 있죠. 루브르 아부다비의 경우, 온종일 햇볕이 내리쬐는 사막이라는 위치가 가장 큰 매력인 동시에 어려움이었는데요. 그는 거대한 둥근 지붕을 덮은 건축물로 묘수를 보여줍니다.



© Juliana Malta, Unsplash



© Agnieszka Kowalczyk, Unsplash

 

건축가는 바다에 여러 섬이 모여 있는 아랍 전통 마을의 모습을 모티브 삼아, 55개의 크고 작은 건축물을 배치하고 그 위로 지름이 180m에 달하는 거대한 돔 지붕을 덮었습니다. 지붕은 야자수 잎사귀들이 얽혀 만드는 그늘과 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는데요. 아랍에서 건물의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전통 문양 마시라비야(Mashrabiya)의 형태로 스테인리스 스틸 프레임을 제작하고, 이를 여러 겹 겹쳐 구현했습니다. 이 지붕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는 또 하나의 작품과도 같습니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아부다비 구겐하임도 2025년 완공 예정이라고 하니, 사막 위에 피어난 예술을 감상하고 싶다면 이 도시를 눈여겨보세요.

@louvreabudhabi

 


건축물이 된 사막의 장미, 카타르 국립박물관(2019)


여러 장의 꽃잎을 겹겹이 포갠 듯한 외관, 직선이나 직각을 거의 발견할 수 없는 기하학적 형태로 과연 어떻게 지은 것일지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건축물, 카타르 국립박물관의 모습입니다. 루브르 아부다비에 이어 중동에서 여러 역작을 펼치고 있는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작품으로, 그는 사막의 장미라 불리는 모래 화석을 형상화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을 디자인했습니다.

 


© Jirayu Koontholjinda, Unsplash


‘사막의 장미’는 해수의 성분이 사막의 모래와 함께 오랜 시간 뒤엉키며 하나의 화합물로 굳어지면서 형성되는 결정체를 뜻합니다. 지역의 고유한 환경이 만들어 냈다는 상징성이 담긴 이 건축물은 현대건설이 시공에 참여해 건축가의 디자인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남다른데요. 독특한 형태는 7만 6천여 장의 패널을 조합해 316개의 원형 판을 만들고 이들을 서로 맞물리게 하여 완성되었습니다. 실내 공간도 겉모습과 마찬가지로 기둥이나 수직, 수평면은 거의 볼 수 없으며, 밀푀유처럼 비정형의 단면을 겹겹이 쌓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 Abdullah Ghatasheh, Pexels


카타르 국립박물관이라는 명칭답게 전시 프로그램 또한 카타르의 아름다움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수천 년 전의 지구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국가의 역사와 그동안 이루어 낸 문명의 귀중한 결과물을 아름다운 건축물과 함께 경험해 보세요.

@nmoqatar

 

 

낙후된 도심을 되살린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2000)


테이트 모던은 지난 기사에서 소개했던 송은의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 설계한 뮤지엄입니다. 건축물이 위치한 뱅크사이드는 런던 내에서도 개발이 더디고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뱅크사이드 화력 발전소는 이곳 템스강변에 지어져 1981년까지 운영되다, 석탄 수요가 줄면서 가동을 멈추고 방치돼 있었는데요.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발전소를 리모델링해 세계적인 현대미술 뮤지엄으로 탈바꿈시킵니다.



© Acabashi; Creative Commons CC-BY-SA 4.0; Source: Wikimedia Commons


건축가는 기존의 건물 위에 반투명한 유리 박스를 얹는 방식으로 발전소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했습니다. 높은 굴뚝, 기다란 창문 등 과거의 장면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새로움을 더한 디자인에 힘입어 뮤지엄은 랜드마크로 발돋움했고, 지역 또한 크게 성장합니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기존 발전소의 양식을 뮤지엄에 맞게 성공적으로 치환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듬해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고, 프로젝트는 지금까지도 도시재생의 선례로 회자하고 있습니다.

 

테이트 모던은 건축 디자인만큼이나 콘텐츠 구성으로도 주목받습니다. 시대나 사조를 순서로 전시 공간을 구획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라 풍경과 정물, 누드, 역사 등 주제별로 공간을 구성해 현대미술관의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었죠. 다양한 국가의 동시대 미술 작품을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길이 155m, 높이는 35m에 이르는 거대한 터빈홀은 매년 세계 대표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으로 채워집니다. 대규모 조각과 설치 예술을 경험하는 곳이자 누구나 자유롭게 예술을 누리고 쉬어가는 뮤지엄의 핵심 스팟입니다.

 


© Samuel Regan, Unsplash



© Romainbehar; Source: Wikimedia Commons


2016년 6월에는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또 한번 설계에 참여해 11층 규모의 건축물을 증축하며, 뉴 테이트 모던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런던 여행을 계획한다면, 과거와 현재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이 장소를 기억해 두시길 바랍니다.

@tate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관람 방식, 구겐하임 뉴욕(1959)


달팽이집을 닮은 나선형의 외관으로 잘 알려진 공간. 드라마 <가십걸>, <섹스 앤 더 시티> 등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한 번쯤 만나봤을 장소, 구겐하임 뉴욕입니다. 미국의 근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설계한 이곳은 뉴욕의 대표 랜드마크이자 20세기의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로, 2019년에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 Claudia Lorusso, Unsplash

 

가장 큰 특징은 안팎으로 드러나는 나선형의 공간입니다. 바깥에서 보이는 모습이 안으로도 그대로 이어져, 관람객은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오르내리며 작품을 관람합니다. 화이트 큐브로 단절과 연결을 반복하는 구성이 아니라 새로운 관람 양식을 건축으로 이뤄낸 것이 인상적이죠. 또한 가운데에는 건물을 관통하는 중정을 내어 미술관 어디에 있어도 작품이 눈에 닿고, 위에는 커다란 천창을 설치해 중앙에서 쏟아지는 빛이 공간에 고루 스며듭니다.



© Kai Pilger, Pixabay



© Nicholas Ceglia, Unsplash

 

한 가지 관람 방식만을 유도한다는 점이 고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미술관의 또 다른 새로운 방식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고, 또한 그 자체가 하나의 오브제로 가치를 지닌 작품이기도 합니다.

@guggenheim

정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