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관객을 한 점으로 만드는 김수자 작가의 힘
세상에 던져진 당신이라는 보따리
: 관객을 한 점으로 만드는 김수자 작가의 힘
어떤 작품은 망연히 우리를 묵상하게 합니다. 달항아리로 잘 알려진 #김수자(@studiokimsooja) 작가의 작품이 그런데요. 그의 신작 <호흡-선혜원>(2025)이 SK의 기업 연구소이자 컨벤션 공간 선혜원을 10월 19일까지 채웠습니다. 이는 <호흡> 연작 중 하나로, 지난해에는 파리 피노 컬렉션 미술관의 폭 29m, 세로 9m 돔 공간 로툰다 홀을 채운 <호흡-별자리>(2024)가 화제가 된 바 있죠.
로툰다 홀의 천장은 19세기말 무역 찬미하는 프레스코화로 채워져 있습니다. 당시 시기를 고려하면 프랑스의 제국주의를 찬미하는 소지가 다분한 그림인데요. 작가는 이곳에 거울을 설치함으로써 천장화를 바닥에 내려둡니다. 로툰다 홀의 거울은 기존의 지배적 관념을 뒤엎는 구조를 만들고, 선혜원 내 경흥각의 거울은 위아래 없이 완결된 세계를 연출해 내죠.
(좌) SK가 최근 문을 연 공간 선혜원의 경흥각에 설치된 김수자의 '호흡—선혜원' 2025
(우) 김수자의 '보따리 트럭-이민자들' 2007
김 작가는 조선 백자의 상징인 달항아리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도 선보여 왔는데요. 그가 만든 달항아리는 두 개의 그릇을 만들어 맞붙이는 식으로 제작됩니다. 은근히 돌출된 옆면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 남은 작은 구멍 하나가 배꼽처럼 남아 출생의 흔적을 보여주죠. 둥그렇지만 완전히 매끄럽지 않고, 말간 얼굴에 흠처럼 남은 구멍은 왜일까요.
1999년작 퍼포먼스 영상 <바늘 여인>은 그 근원을 추측케 합니다. 7개의 도시에서 뒷모습을 내보인 채 우두커니 선 인물. 그는 딱 자신이 자리한 반경만큼 주변 공기를 변화시킵니다. ‘바늘 여인’을 포함한 거리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세상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세계를 엮는 바늘들. 길 한복판에 버티고 있는 인물과 행인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지상 만물의 중력을 온몸으로 감각하고 있음이 다를 뿐이죠. 영상은 서 있는 인물을 통해 자신이라는 유일한 존재로서 세상에 구멍-균열을 내는 일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좌) 김수자의 'To Breathe—Constellation(호흡 – 별자리)' 2024
(우) 김수자의 달항아리
김수자 작가를 세상에 알린 건 ‘보따리’였는데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에서 그의 영상 작품 <보따리 트럭 - 이민자들>(2007)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영상은 프랑스 파리 남동쪽에서 파리 중심부를 관통하며 보따리를 가득 실은 채 이동하는 여인을 비춥니다. 여인의 등에 고정된 카메라의 올곧은 시선은 잔뜩 부푼 몸뚱이의 꽃무늬 보자기와 이를 꽉 묶은 매듭과 대비되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죠. 선명히 느낄 수 있는 건 제 길을 가겠다는 결연함입니다.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도착할지는 모르더라도요.
(좌) 김수자의 ‘To Breathe – Mokum’ Oude Kerk in Amsterdam 2025
(우) 네덜란드 라켄할시립미술관 김수자 개인전 'Kimsooja – Thread Roots' 2024
김수자 작가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시점을 잇거나 해체하고(<호흡> 연작), 한 세계를 생성하고(달항아리), 지상에 균열을 내고(바늘 여인), 아직은 펼치지 못한 점 형태의 삶이 축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보따리) 차원을 감각하게 합니다. 그녀의 손끝에서 열리고 닫히는 차원은 불티처럼 피어났다가 사그라드는 우리 각자의 존재를 보여주는 듯하죠.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대상 없는 애틋함이 차오릅니다. 그건 언젠가 지금의 나처럼 이 세계를 바라보고 감겼을 눈을, 나아가 한 사람이라는 차원 하나를 잃고도 계속될 세계를 암시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지금의 내가 누군가 보고 또 보았던 세계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듯이 말이죠.*
* 차용: 최승자, 『쓸쓸해서 머나먼: 왜 세계는 』, 문학과지성사, 2010, p 26.
Editor. 성민지
Image. 김수자 작가 인스타그램, 피노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