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하루 한 팀에게만 허락되는 대지 미술



하루 한 팀에게만 허락되는 대지 미술

: 예측 불가능한 자연을 그대로 마주하는 순간



미국 뉴멕시코 서부 고원의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400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기둥이 솟아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잇듯 수직으로 솟은 이 작품은 #월터드마리아(Walter De Maria)의 <The Lightning Field>입니다.


1977년 완성된 이 작품은 매년 5월부터 10월 사이, 전 세계 단 한 장소에서만 관람할 수 있죠. 하루 한 팀, 최대 여섯 명. 24시간을 온전히 이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사진 촬영은 제한되고, 이곳의 기억은 오롯이 개인의 감각에 맡겨집니다.


작품의 정확한 위치는 공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방문객들은 뉴멕시코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디아아트파운데이션(@diaartfoundation) 건물에 모여, 다시 차를 타고 고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죠. 도시의 소음이나 인공적인 빛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장소입니다.





‘번개 치는 들판’이라는 작품 제목은 다이내믹한 장면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월터 드 마리아는 번개 발생 빈도가 높은 이 지역을 찾기 위해 5년이란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러나 번개가 내리치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쉽지 않죠. 그저 빛과 날씨, 시간의 흐름이 끊임없이 다른 가능성을 열어 보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번개 없이도 작품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관람자에게 장엄한 광경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다만 번개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서, 감각을 열어 둔 채 자연의 시간을 견디도록 할 뿐입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기둥 사이를 걷고, 멈춰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죠. 비 온 뒤 젖은 땅을 밟고, 해가 기울며 달라지는 빛을 응시하다 보면, 끝없이 펼쳐진 공간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체감하게 됩니다. 하늘과 땅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지고, 시간의 흐름마저 달라지는 것 같죠.





이러한 경험은 월터 드 마리아가 일관되게 유지해 온 작업의 태도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자연을 재현하거나 상징으로 다루기보다, 거리와 시간, 날씨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초월성 자체를 작품의 구조로 삼아왔습니다. 그래서 <The Lightning Field>는 땅 위에 세워진 조형인 동시에, 하루라는 시간으로 완성되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일부러 멀고 불편한 길을 택해 도착한 이 여정에서, 나를 규정하던 기준들은 점차 힘을 잃습니다. 자연 앞에서는 명예나 성취도 더 이상 나를 설명하지 않죠. 남는 것은 그 자리에 있는 ‘나’라는 감각뿐입니다.


2월 1일,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이 2026년 5-10월 시즌 예약을 오픈했습니다. 맞설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자연 앞에 서서, 잠시 삶의 속도와 기준을 내려놓아 보는 건 어떨까요. 예약과 자세한 정보는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ditor. 최영진

Image. Dia Art Foundation


#WalterDeMaria #대지미술

추천 콘텐츠

아티스트

바람을 조각하는 장인 이광구의 공작선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완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클릭 몇 번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음악을 작곡하며 심지어 이런 글조차 몇 초 만에 완성해 내죠. 흥미롭게도 이런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되레 가장 느린 창작을 돌아보기 시작했는데요. 손으로 빚은 도자기와 손으로 엮은 직물, 그리고 오늘 소개할 이 한 자루의 부채처럼 말입니다.

아티스트

반 고흐가 감명 받은 히로시게의 빗줄기

연일 이어지는 장마로 눅눅한 공기를 마주하고 있으면, 문득 빗줄기의 리듬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살려낸 한 화가 #우타가와히로시게(歌川広重, 1797~1858)가 떠오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70년 전, 그는 카메라 렌즈도 없던 시절에 대담한 선과 색채만으로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의 물리적인 속도감과 그 속을 헤쳐가는 사람들의 생동감을 포착했습니다.

아티스트

현실과 스크린의 경계를 허무는 A24의 독창적 세계관

혹시 영화를 고를 때 주연 배우보다 배급사 이름부터 확인해 본 적 있으신가요? 요즘 관객들은 #A24(@a24) 영화라면 일단 믿고 본다며 이들은 브랜드 자체의 팬덤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요. 관객을 스며들게 만들었던 A24만의 독창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을 소개합니다.

아티스트

영화 포스터의 공식을
깨버린 디자이너 박시영

영화 포스터는 대중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삼는 상업 예술입니다. 철저히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대중을 설득해야 하죠. 그렇기에 포스터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직관적인 매력을 지니는 동시에, 영화의 본질을 담아내는 깊이도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아티스트

디올의 영감이 된 조각가 린다 벵글리스

#디올(@dior)의 FW 26/27 오트 쿠튀르 쇼 그리고 오는 9월 뉴욕 #페이스갤러리(@pacegallery)까지 주목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85세의 미국 조각가, #린다벵글리스(Lynda Benglis)입니다.

아티스트

엘리베이터 문 닫히려는데 눈 마주쳐서 억지로 열어줌에 어울리는 작품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엘리베이터 안의 그 어색함. 문이 닫히려는 순간 달려오는 타인과 눈이 마주쳤고, 못 본 척하기엔 이미 늦었습니다. 매너 있는 척 열림 버튼을 눌러줬지만, 문이 닫히고 나면 그 좁은 공간에 둘이 남습니다. 이후 서로 없는 사람인 듯, 핸드폰만 내려다보는 몇 초간의 적막이 이어지죠.

아티스트

바스 얀 아더의 가장 완벽한 추락

우리는 늘 상승의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비상의 순간은 끊임없이 기록되고 전시되지만, 하강과 실패의 흔적은 쉽게 지워집니다. 추락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집요하게 기록한 미술가가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의 개념 미술가 #바스 얀 아더(Bas Jan Ader, 1942-1975)입니다.

아티스트

리만 머핀이 선택한 96년생 한국계 작가, 안나박

웃고 있지만 어딘가 비어 보이는 얼굴, 파편처럼 흩어진 신체, 화면을 가득 메운 회색빛 목탄. #안나박(@annaparkart)의 대형 드로잉 앞에 서면 묘한 긴장감이 맴돕니다. 익숙한 듯 낯선 이 장면들은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이미지의 이면을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