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리만 머핀이 선택한 96년생 한국계 작가, 안나박
리만 머핀이 선택한 96년생 한국계 작가
: 리만 머핀 갤러리 역사상 최연소 전속 작가로 합류
웃고 있지만 어딘가 비어 보이는 얼굴, 파편처럼 흩어진 신체, 화면을 가득 메운 회색빛 목탄. #안나박(@annaparkart)의 대형 드로잉 앞에 서면 묘한 긴장감이 맴돕니다. 익숙한 듯 낯선 이 장면들은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이미지의 이면을 드러냅니다.
1996년 대구 출생, 현재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안나 박은 글로벌 갤러리 #리만머핀(@lehmannmaupin)의 전속 작가입니다. 그가 주목하는 건 SNS와 광고 속 ’굿 걸(Good Girl)‘ 이미지죠. 완벽한 미소, 순종적인 태도, 흠 없는 외모. 하지만 그는 이 이미지들을 1950-60년대 광고와 만화에서 찾아냅니다.
(좌) Anna Park, Sip of that KoolAid, 2019
(우) Anna Park, Did I Leave the Lights On?, 2019
왜 과거의 이미지일까요? 70년 전 광고 속 여성상과 오늘날 SNS 필터를 통과한 셀카가 놀라울 만큼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성에게 요구되는 ’이상적 이미지‘는 여전히 비현실적이고 획일적이죠. 안나 박은 이 오래된 광고들을 목탄으로 재해석하며, 미디어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아름다움의 폭력성을 폭로합니다.
그의 그림 속 여성들은 모순적입니다. 미소 짓지만 눈빛은 경계하고, 포즈를 취하지만 몸은 뒤틀려 있죠. 보여주길 원하면서 동시에 거부하는, 순응과 저항 사이를 오가는 오늘날 여성의 복잡한 내면이 한 화면에 응축됩니다. 작가는 ”내 작품 속 여성들은 고정관념에 순응하지 않는 주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는 그의 도구는 목탄입니다. 색채 대신 명암과 질감으로만 승부하는 이 재료는, 과잉 컬러로 가득한 디지털 세계에 대한 그만의 대답이죠. 겹겹이 쌓인 목탄의 층은 전통 먹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동시에 SNS 화면 속 가공된 이미지를 비추는 ”검은 거울“이 됩니다. 2~4미터 대형 화면을 흑백으로만 채우는 방식은, 전통적 재료로 동시대의 가장 첨예한 질문을 던지는 역설입니다.
2019년 아티스트 KAWS(@kaws)가 그의 작품을 구입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고, 현재 하이미술관, ICA 마이애미 등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올해는 리만 머핀 런던 개인전을 앞두고 있죠.
Anna Park, First Wedding, 2021
최근 그의 작업은 더욱 직접적입니다. 영화 〈더 서브스턴스〉에서 영감을 받은 시리즈에서는 젊음에 집착하는 사회, 여성 몸에 가해지는 압박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완벽해 보이려는 강박,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상적 여성상. 그의 작업은 이 모든 것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기준 자체를 질문합니다.
웃는 얼굴 뒤에 숨은 불안, 아름다워 보이려는 강박, 그리고 그 모든 기대를 거부하고 싶은 욕망. 안나 박의 검은 화면은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이미지의 이면을, 그리고 그 이미지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 자신을 비춥니다.
Image. Anna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