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서로 다른 꿈을 꾸는 AI 시대의 예술가 3
서로 다른 꿈을 꾸는 AI 시대의 예술가 3
: 신기술에 대한 추앙과 비판. 클라우디아 라허, 아니카 이, 박민하
개인과 기업, 국가까지 모든 주체의 관심사가 AI로 쏠린 가운데 그로 인한 시대적 변화는 돌이킬 수 없어 보이는데요. 언제나 시류의 최전선을 달리는 예술가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AI를 바라봅니다. 신기술에 대한 추앙과 비판 모두에 거리를 두고 시야를 트여주는 예술가 셋을 소개합니다.
클라우디아 라허, 과거를 새로 쓰는 미래
클라우디아 라허(@claudia_larcher)는 2023년작 <스틸 라이프 3000(Still Life 3000)>에서 바니타스 회화를 끌고 옵니다. 바니타스란 세속적 대상을 화려하게 묘사함으로써 삶의 무상함을 드러내는 회화의 한 종류인데요. 17세기 네덜란드 그림을 증강현실 앱으로 디지털화한 작품은 지금의 삶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향상됐는지 묻는 듯합니다. 신기술에 대한 열광은 언젠가 소멸할 삶의 유한함을 강조할 뿐이죠.
(좌) 클라우디아 라허 <스틸 라이프 3000(Still Life 3000)> 2023
(우) 클라우디아 라허 <AI와 역사적 재해석의 예술(AI and the Art of Historical Reinterpretation)> 2024
작가는 2024년 프로젝트 <AI와 역사적 재해석의 예술(AI and the Art of Historical Reinterpretation)>에서 한 발 나아갑니다. 그는 기존 역사가 편향돼 있다는 데에 주목하는데요. 젠더, 즉 남성과 이성애자, 시스젠더 위주로 쓰인 기존 역사가 AI의 학습 대상으로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이죠. 이에 작가는 LGBTQ에 대해 질문하며 데이터의 결함을 채워 나갑니다. 이로써 AI는 소수자의 흐릿한 역사에 해상도를 높이죠. 라허의 작품은 AI가 과거를 새로 쓰는 미래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니카 이, 서로를 숙주 삼아 이어지는 삶
지난해 9월 리움미술관에서 아시아 최초 개인전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을 연 아니카 이(@anickayi_studio). 아니카 이는 생물과 무생물에 대한 구분을 흐리고, 개체와 개체, 나아가 기계를 뒤섞으며 이질적 물질들이 교류함으로써 지속되는 삶을 보여줍니다.
(좌) 아니카 이, <또 다른 너> 2024
(우) 《현대 커미션: 아니카 이 : 인 러브 위드 더 월드(In Love With the World)'》 전경
<또 다른 너>는 바다 유래 단백질을 조작해 만든 대장균을 거울과 비치한 작품인데요. 유전적으로 개조된 대장균은 분명 새로운 미생물이지만, 바다라는 뿌리를 지닙니다. 이를 시각적으로 매개하는 거울은 지구 자원을 이용해 영생을 꿈꾸는 인간의 욕심을 비추죠. 앞서 테이트모던 터빈홀에서는 주변 냄새에 반응하는 작품 <에어로브(aerobe)>를 전시했는데요. 작가에게 생물과 무생물, 기계는 서로 침투함으로써 생존에 영감을 주는 관계입니다.
아니카 는 작가가 죽은 다음에도 작업이 생존할 수 있을지 자문합니다. 머신러닝을 통해 AI로 만든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2024)는 그간의 작업을 AI에게 학습시켜 가상생물처럼 구현한 것. 현재까지 AI는 작가의 작업을 숙주 삼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인간과 AI를 숙주-기생의 관계라고 한다면, 둘은 서로 유익한 방향으로 공생할 수 있을까요?
박민하, AI의 무의식에 들어간다면
‘세종대왕 맥북 프로 던짐’ 사건, 들어보셨나요? 일명 챗gpt 환시 논란인데요. 10월 5일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는 《두 번째 삶:변화하는 삶에 대한 단상》전에서 박민하 작가(@minha_p)는 AI의 환각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유령 해부학>에서 AI 캐릭터 ‘노아’가 환각을 고치려고 최면치료에 돌입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옮겨낸 것. 작가는 새롭게 등장한 비인간 존재, AI의 시각에 온전히 참여합니다. 작품은 AI의 환시와 망각과 왜곡 위에 살아가는 인간의 특성을 뒤섞어 버리죠.
(좌) 박민하 <유령 해부학> 설치전경
(우) 박민하 <잡을 수 없는 눈 이야기 A Story of Elusive Snow> 13min, 2013
앞서 작가는 2013년작 <잡을 수 없는 눈 이야기>에서 LA를 점령한 가짜 눈에 주목한 바 있는데요. LA는 거의 눈이 오지 않지만, 전 세계적 판타지를 생산하는 영화 산업의 거점답게 눈도 기어이 만들어 냅니다. ‘매직 스노우’ ‘스노우 비즈니스’와 같은 특수효과 회사는 가상의 존재를 구현하는 산업의 기이함을 보여주죠. 이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AI는 대두된 기술일 뿐, ‘없는 것을 향한 열망’은 인간의 오랜 고유함에 가깝습니다.
가상과 현실. 첨예하게 병존하는 것들은 긴장을 자아냅니다. 영화 산업은 LA를 배우 지망생들의 꿈과 좌절을 낳는 장소, ‘라라랜드’로 만들었는데요. AI와 함께 하는 미래에 대한 낙관과 기존 일상에 대한 균열이 혼재하는 요즘. AI는 어떤 현실을 꿈꾸게 하고, 어떤 꿈을 앗아갈까요?
Editor. 성민지
Image. 각 작가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