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자연과 협업하는 조각가 주세페 페노네



인간이 만들고 자연에 돌려주는 작품

: 자연과 협업하는 조각가 주세페 페노네



오래 본 책은 모서리가 둥글어지고, 한자리에 내내 걸려있던 옷은 옷걸이 선을 따라 바랩니다. 인간의 몸은 평소 몸을 쓰는 방식에 따라 습관을 닮은 형상이 되죠. 알아차리기 쉽지 않을 뿐, 인간과 모든 존재는 저마다 보낸 시간을 제 몸에 체득합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조각가 주세페 페노네는 인간과 자연의 얽히고설킨 힘을 보여주는 조각을 통해 우리의 무감한 일상 활동에 제동을 걸고, 살아 숨쉬는 감각을 되살리죠.


주세페 페노네는 이탈리아 피에몬테주의 가레시오에서 자랐습니다. 지난 9월 뮤즈 매거진에 실린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당시 마을에서의 삶을 ‘19세기식 삶’이었다고 회고하는데요. 농업과 소상인들의 경제활동이 전부고, 평생 한 마을에서 살다가는 소우주 같은 삶. 이런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그는 20대에 일본을 방문합니다. 이때 접한 이끼 정원과 모래 정원은 그에게 자연을 향한 욕구를 상기시켰죠.


1968년, 주세페 페노네는 첫 작품 <해양 알프스(Alpi Marittime)>을 발표합니다. 나무를 그러 쥔 손 형상을 나무에 단 것인데요. 시간이 흐를수록 자라는 나무는 힘에 굴복하지도, 이기지도 않는 대신 협력과 대항을 거듭하며 조각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의 작품은 이처럼 이미 존재하는 나무, 돌, 잎사귀 등에 미묘하게 개입해 좀처럼 감각하기 힘든 자연의 힘을 보여주죠.




(좌) 주세페 페노네, <해양 알프스(Alpi Marittime)> 1968
(우) 주세페 페노네, <감자(Patate)>



그의 작품은 ‘가난한 미술’이라는 뜻으로 일상에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재료를 가공을 최소화해 작품으로 만드는 미술 운동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말할 때 소환됩니다. 다만 그의 개입은 양적으론 적을지 몰라도, 매우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방식으로 이뤄지는데요. 강에서 채집한 돌을 보고 돌에 남은 강의 물길을 본뜬 <강이 되다(Essere Fiume)>, 나무의 표피와 속살을 갈라 한 몸에 공존하는 시간성을 보여준 <삼나무(Albero portacedro)>, 자신의 얼굴을 본뜬 형틀에 감자를 심고 키워낸 <감자(Patate)>, 철망 안에 월계수 잎을 넣어 허파를 닮은 공간을 만든 <그림자를 숨쉬다(Respirare L’ombra)>까지.




(좌) 주세페 페노네, <돌의 생각들(Idee di pietra)>
(우) 주세페 페노네, <뿌리의 잎(Le foglie delle radici)>



주세페 페노네는 인간의 개입과 자연의 힘을 동등한 선에서 다룹니다. 지난 9월 7일까지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에 전시된  <돌의 생각들(Idee di pietra)>은 돌을 이고 진 상태로 가지를 뻗어낸 나무를 보여줍니다. 어디까지가 인간, 혹은 자연의 영역인지 구분하는 순간에도 작품은 햇빛과 바람의 풍화작용을 따라 무상히 나이 들어가고 있죠. 그의 작품은 죽음에 맞서는 힘을 보여주면서도 세월에 사그라드는 소멸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인터뷰 참고: GIUSEPPE PENONE, Muse Magazine, September 19th.


Editor. 성민지

Image. 주세페 페노네, 서펜타인 갤러리, 마리안 굿맨 갤러리, 피노 컬렉션


#주세페페노네 #아르테포베라

추천 콘텐츠

아티스트

바스 얀 아더의 가장 완벽한 추락

우리는 늘 상승의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비상의 순간은 끊임없이 기록되고 전시되지만, 하강과 실패의 흔적은 쉽게 지워집니다. 추락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집요하게 기록한 미술가가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의 개념 미술가 #바스 얀 아더(Bas Jan Ader, 1942-1975)입니다.

아티스트

하루 한 팀에게만 허락되는 대지 미술

미국 뉴멕시코 서부 고원의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400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기둥이 솟아 있습니다. 하늘과 땅을 잇듯 수직으로 솟은 이 작품은 #월터드마리아(Walter De Maria)의 <The Lightning Field>입니다.

아티스트

리만 머핀이 선택한 96년생 한국계 작가, 안나박

웃고 있지만 어딘가 비어 보이는 얼굴, 파편처럼 흩어진 신체, 화면을 가득 메운 회색빛 목탄. #안나박(@annaparkart)의 대형 드로잉 앞에 서면 묘한 긴장감이 맴돕니다. 익숙한 듯 낯선 이 장면들은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이미지의 이면을 드러냅니다.

아티스트

MMCA 올해의 작가, 김영은이 기록한 차별의 소리

어떤 소리는 듣는 순간 사라지지만, 어떤 소리는 몸에 각인되어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전쟁의 사이렌, 차별의 언어, 이별의 침묵. #국립현대미술관(@mmcakorea)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상 2025‘ 수상자 #김영은(@youngeunkiim) 작가는 이처럼 기억 속에 새겨진 청각적 트라우마를 소리라는 매체로 불러냅니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경험을 넘어, 권력과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청취를 어떻게 구조화하는지 예민하게 포착하죠.

아티스트

개념미술과 퍼포먼스의 선구자, 오노 요코

70년 작업을 아우르는 #오노요코의 대규모 회고전 《오노 요코: 마음 속의 음악(Music of the Mind)》가 유럽과 북미를 순회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는 단순히 '존 레논의 아내'가 아닌, 개념미술과 퍼포먼스의 선구자로서 오노 요코를 재조명하죠. 2024년 2월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시작해 독일 뒤셀도르프와 베를린을 거쳐, 현재 #시카고현대미술관(@mcachicago)에서 2026년 2월 22일까지 진행 중입니다. 이후 2026년 5월 LA 더 브로드로 이동하며 대장정의 막을 내리죠.

아티스트

완성된 이름 vs 거친 가능성, 흑백예술가

우리나라 미술계를 흑과 백이라는 두 계급으로 나눠본다면 어떨까요?

아티스트

손정기의 회화가 고독과 고립 사이에 남긴 거리

#손정기(@son_art) 작가는 원래 드럼을 쳤습니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군대에서 손을 다친 이후였죠. 좋아하는 일을 관두게 되었을 때, 그는 침잠하는 고독을 느꼈습니다.

아티스트

세상을 움직인 예술가의 명언들

예술가의 문장은 작품만큼 오래 남습니다. 피카소는 예술을 거짓이라 했고, 장욱진은 그림 그린 죄밖에 없다 했죠. 루이스 부르주아는 거미처럼 수선했고, 게릴라 걸스는 소수를 위한 예술을 거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