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전쟁의 참상을 감각하게 하는 조각가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앉아있는 4개의 형상들(4 Seated Figures)' 2002
전쟁이 지나간 자리 남겨진 인간성
: 전쟁의 참상을 감각하게 하는 조각가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세계는 분열하고 있습니다. 3년 넘게 지속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충돌 뒤에는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따지기조차 힘든 피로 물든 역사가 함께 하죠. 모든 전쟁에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전쟁은 사람이 지닌 대부분을 파괴합니다. 목소리를, 위장을, 심장을, 나아가 영혼을 비우게 강요하죠. 폴란드 조각가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Magdalena Abakanowicz, 1930 - 2017)의 작품처럼 말이죠.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아바카노비치의 삶을 폴란드 역사를 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1930년,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인근 팔렌티에서 태어난 그녀는 숲에 둘러싸인 유년기를 보냅니다. 그리고 열 살이 되던 해, 독일의 침공으로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화염터가 되죠. 이때 그녀는 눈앞에서 어머니의 팔이 나치의 총격에 절단되는 것을 목격합니다. 종전 뒤 폴란드는 공산주의 진영인 소련 치하에 놓이는데요. 그녀가 바르샤바 조형예술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던 1950년대는 공산주의를 찬미하거나 노동계급의 해방을 다루는 작품을 우상시하던 때. 이 같은 시대상은 그녀가 자신만의 화법을 만드는 압력으로 작용하죠.
(좌)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등 80(80 Backs)', 1976-1980
(우)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Crowd III' 1988-1989
아바카노비치는 붓과 물감 대신 섬유로 눈을 돌립니다. 그녀가 즐겨 쓰던 소재는 사이잘삼과 황마인데요. 1976년부터 무려 4년간 제작한 <등 80(80 Backs)>를 볼까요. 몸의 장기는 물론 손부터 팔꿈치, 허벅다리 살을 통째로 들어낸 몸이 눈에 들어오죠. 머리 없이 속을 게워낸 인간은 무언가를 판단할 능력도, 움직일 동력조차 없습니다. 굳은살을 닮은 황마는 마치 피부 세포 하나하나가 삶에 항복한 듯한 인상을 일으킵니다. 또 다른 작품, <앉아있는 4개의 형상들(4 Seated Figures)>은 존재를 인지한 순간부터 한 자리에 붙박이로 앉아있던 게 아닐지 의심을 일으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포승줄에 묶여 오도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듯한 형상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동시에 허상과도 같은 공포에 대해 질문하죠.
그녀를 전 세계적으로 알린, 그녀의 이름을 딴 초기 작품 ‘아바칸(Abakan)’는 농업용 밧줄이나 자루에 쓰이던 사이잘삼으로 만들어졌는데요. 후반기에 쓰던 황마에 비하면 한결 거칠고 질긴 소재가 특징이죠. 그중 <아바칸 레드(Abakan Red)>는 상처입은 짐승의 가죽을 연상시킵니다. 손바닥을 너르게 펼쳐 가만히 대 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죠. 척박한 질감과는 대조되게 천장 이곳저곳에 몸을 의탁한 모습은 쉬운 위로와 명시적 질문 모두를 넣어두고 작품을 응시하게 합니다.
(좌)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Backs', 1976-1980
(우)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 '아바칸 레드(Abakan Red)', 1969
그녀의 후기작은 초기작에 비하면 아주 멀리 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인간적’이라 불리던 모든 덕목을 바치고 투항한 모습만 같죠. 길들여지지 않은, 그러나 연민을 일으키는 야생성을 오랜 시간 교묘한 방식으로 묵살한다면 이런 모습일까요. 2017년 작고한 아바카노비치는 2005년 뉴욕 국제조각센터 평생공로상 수상 당시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만든,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 직면해 있다”며 조각은 그러한 현실 감각을 반영한다고 밝혔는데요. 20년 전 그녀의 발언이 밟히는 건 왜일까요. 당신이 느끼는 세계에 대한 감각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요?
Editor. 성민지
Image. Brabant, TATE, 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