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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부터 디올까지 83세의 조경 감각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대한민국 1세대 조경가이자 삭막했던 우리 국토를 생경한 녹색으로 수놓아 온 #정영선(1941~)의 초록빛 예술을 소개합니다.





“아버지는 선교사 계통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어요. 그 학교가 화강암으로 지은 미국식 건물이었는데 정원에는 선교사들이 온갖 꽃과 나무들을 심었어요. 내가 늘 거길 지나다녔거든요. 아주 토속적이고 깨끗하고 미니멀한 시골 경관, 그와 전혀 다른 서양식의 화려한 정원을 매일 봤어요. 그 장면들은 아직 꿈에서도 못 잊어요.”





정영선의 숨 가쁜 80여 년 삶 너머로 아련한 고향 풍경이 바래지 않은 채 선명한데요. ‘더 나은 우리 땅’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 있던 것이 바로 그 기억 속 초록빛 풍경 덕분입니다. 이분의 위대함을 세속적으로 알리고자 한다면 단어로 열거하면 그만인 경력을 꺼내 들면 되겠죠. 예술의 전당(1984), 국립중앙박물관(1997), 선유도공원(2002), 광화문광장(2007),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2007), 신라호텔 영빈관(2009), 아모레퍼시픽(2016), 디올 성수(2023) 기타 등등. 어느 한 곳 손색없는 프로젝트만으로도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는 인물이 조경가 정영선입니다.





하지만 못내 아쉽습니다. 이분을 ’조경가‘로 소개하는 것도, 작업물로 상징하는 것도요. (필자의) 대학 시절 조경학과에 대해 그 전문성을 의심하기도 했던 못난 기억 때문에라도, 누구보다 ‘조경’의 깊이와 난이도를 설득하고 싶기 때문인가 봅니다. ‘남는 공간에 나무랑 꽃 심고 길 내면 그만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식물 또한 생명체로서 ‘터전’을 중요시하고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수십만 종의 식물, 각자가 요구하는 삶의 조건과 서로 간의 충돌까지 고려하는 동시에 인간에게도 이로운 환경을 설계하면서 시각적으로도 조화로워야 한다니. 넓고 풍부한 과학적, 인문학적 지식에 예술적 감각을 겸비해야 하는 굉장히 까다로운 학문이죠. ‘경치를 짓는다.’라는 조경의 의미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적잖은 이들에게 마치 ‘도울 조’처럼 여겨져 아쉬운 반응들이 있습니다.


‘나의 걸음이 만들어갈 길에 풀 한 포기조차 짓밟히지 않도록, 내 삶이 언제나 더불어 가길.’ 바라는 것 같은 정영선의 사려 깊은 태도가 알게 모르게 우리네 터전 곳곳에 배어있는데요.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그 위대한 초록빛 여정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 정영선, 국내 1세대 조경예술가

∙ 2024.04.05 ~ 2024.09.22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 조경설계 서안, 국립현대미술관, 이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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